이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계속 죽음에 노출된다. 이건 죽을 위험에 빠진다는 뜻이 아니라 가족들의 죽음을 연달아 맞이한다는 의미다. 그때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영화는 그걸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가 길을 떠나는 모습만 보여준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노력했지만,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그래. 이 영화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지. 영화 속에서 잠시 언급되는 신들의 이름, 소설과 시의 이야기까지. 그건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그에게 위안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3편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는 쓰고 있던 소설을 버려 버리지 않는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침내 그는 모든 것과 등을 지게 된다. 죽음에 노출되는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실이 아닐까. 3부작의 마지막에서 그는 아들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길을 떠나게 된다. 영화는 삶과 죽음과 같은 인생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쓸데없이 불안하다. 이번에는 누가 죽게 되는 것일까. 세상은 그에게 다시 희망을 주었는데, 그걸 또 뺏어가 버리는 건 아닐까. 이상하게 영화를 결 그대로 읽어내기 싫었다.
여기에 글을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쏜살같은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깨달은 것은 세상은 나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쯤 되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완전히 부정당하는 것이다. 나는 왜, 무슨 이유로 지금까지 살아온 걸까. 이제 이런 식의 자기반성과 자기연민은 너무나 지겹다.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이런저런 식으로 행동을 해 봤는데, 모두 다 틀렸다고 말한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열심히 영화를 보고, 읽고, 쓰고 생각했던 시간들은 아침의 안개처럼 모두 다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모두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특별한 것은 아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걸까. 진심으로 모르겠다. 본 영화에 대해서 쓰고 본 영화에 대해 말하고, 그걸 보고 생각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도대체 왜 공부를 하는 걸까. 공부한 것을 삶의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 지식과 실천 사이에는 넓은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걸 건너기 위해, 혹은 그 간격을 최대한 좁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냥 그 흐름에 맞춰 흘러가는 게 나은 건가. 제도에 따라 그렇게 흐르면 되는 걸까.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방법과 노력들이 전부 잘못된 방향으로 흘렀다는 점이다.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읽었던 것들, 그걸 보면서 다듬었던 것들은 도대체 나에게 무얼 가져다준 걸까. 이런 한탄과 후회, 회환도 이제 모두 지겹다. 다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변명 대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도 잘 안된다. 해결책을 찾는 것은 젊었을 때나 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런 후회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