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 가까운 확률
여기까지 왔다.
내 힘으로,
몇 년 후에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뭘 하고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어떤 시절, 꿈은 원대했지만, 그래서 허상에 가까웠고, 어떤 시절엔 아무 희망도 없어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가 버거웠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무언가 이루고 싶었고,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란 걸 하고 싶었고, 그게 안되면 그저 남들의 평균이라도 살고 싶었는데, 그 무엇도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창 밖을 내다보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도로 위를 지나는 차들,
저 많은 차들은 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관측되어지지 않는 주변의 삶을 살면서 오로지 관측자의 입장에만 머무른다.
열심히들 사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들 열심인 걸까. 그들의 추동이 무엇이고 그가 사는 삶의 근간이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런 내가
여기까지 왔다.
살아서 내 힘으로, 아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더 이상 삶을 버거워하지 않는 내가 있고,
매일 아침 글을 쓰기 위해 눈을 번쩍 뜨는 내가 또 있다.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혼자가 아니었고, 그 숱한 인연들은 왔다가 흩어지는 듯했지만 내 안에 무언가를 남겼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지금은 어렵사리 할 수 있다.
터널링,
0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온 삶,
우리 모두가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것이 당신과 나의 삶,
우리가 오늘 살아낼 하루 역시,
터널링이고 기적이다.
***터널 효과: 넘을 수 없는 장벽이라고 계산되는 곳을 양자 입자는 그냥 통과해 버린다. 수많은 경로 중 거의 확률이 0에 가까운 경로를 통과하는 것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