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코헤런스

'원래'라는 말에 대하여

by 리다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교감선생님이 갑자기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 친구 때려본 적 있어요?"


테이블 구조 상 시선의 흐름이 교감 옆에 앉아 있던 선생님에게로 갔다. 시선을 받은 선생님은 누가 봐도 순둥순둥한 사람이었기에 "왜 다들 저를 보세요? ^^ 제가 어딜 봐서요, 맞았으면 맞았지..."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교감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요? 애들 많이 때리고 다녔을 것 같은데."

나도 대답했다. "저요? 오히려 지금 기억나는 건 애기 때 하도 한 여자아이한테 자주 맞아서 서른도 안 되었던 엄마가 너무 속상한 나머지, 골목 구석으로 데려가서 다시는 때리지 말라고 겁준 적도 있어요. 지금은 어른이 그렇게 하면 큰 일 나는데, 옛날엔 그런 시절도 있었네요."하고 웃고 말았다.


이야기는 아이들 훈육하는 이야기, 학폭 이야기로 흘러갔고, 다시 교감이 이어받아 예전에 딸의 친구가 딸의 얼굴을 할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서는 나를 보면서 또 덧붙였다.


"선생님도 애들 할퀸 적 있죠?"


나는 순간, 뭐지? 이 사람이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제가요? 저 그런 이미지예요?" 하고 웃고 말았다.


'그럴 것 같다'라는 라벨을 사람한테 붙이는 사람, 그리고 큰 소리로 자기가 적은 것을 남에게 말하는 사람이 예전부터 나는 불편했다. 한 사람이 가진 복잡다단하고 섬세한 파동이 타인의 시선으로 왜곡되고 고정되는 것이 속상하고 안타깝다. 한 존재의 결이 흐려지는 것은 거대한 사건 때문만은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되는 한두 마디 말, '원래 너는 이런 애야', '너는 그럴 것 같은데.'라는 라벨, 그리고 그 말을 아무 검증 없이 믿어버린 어떤 날과 사람들. 각각의 사람들이 가진 무늬는 원래 하나였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무늬를 잘 구별하고 식별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라는, 아이 하나의 우주가 한 문단, 아니 한 줄로 축약되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늘 그런 문장을 적어왔다.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그리고, 그런 문장을 받는 엄마가 되었다. 학교라는 환경 속에서, 아이가 가진 모든 파동의 무늬는 생기부에 적힌 말 몇 줄로 정리된다. 여러 상태로 겹쳐져 있던 아이는 하나의 라벨로 굳어진다. 나는 알고 있다. 아이의 상태가 정말로 하나로 줄어든 게 아니라, 세상이 구분해 주는 상태의 수가 줄어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줄어든 언어가 아이의 작은 어깨 위에 얹힌다. 먼지 한 톨, 공기 분자 하나, 아주 약한 빛 하나가 스쳐 지나가도 파동의 예민한 결은 흐려진다. 수많았던 가능성은 빛을 읽고 깨져 버린다. 아이의 존재라는 입자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파동의 고유한 무늬만 사라진다.


세상이 그 무늬를 더 이상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 관계도 계속해서 디코헤런스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환경 속을 살아가기에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기에 나는 저항하고 싶다. 말과 시선으로 아이의 결, 나 자신과 그 누군가의 결을 너무 빨리 확정하지 않으려는 저항을 말이다.


소중한 이에게 “그래도 나는, 이 사람의 결을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겠다”라고,

누구를 소개할 때 붙이는 한 줄을 조금만 더 조심해서 고르겠다고, 아이를 정의하는 말 앞에 “원래” 대신 “요즘은”을 붙여 보는 노력을 하겠다고, 그리고 나 자신을 ‘한 줄 요약’ 하지 않겠다고,


이런 작은 선택들이 우리의 고유한 색채를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는 방식의 저항이라고, 그래서, 적어도 나는, 누군가의 결을 말과 시선으로 너무 빨리 한 줄로 정리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세상이 너를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지라도,

하나의 이름으로 굳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실 너는 더 많은 가능성이었어'


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건 이 우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리코히어런스, 재정렬이다.


***디코헤런스(Decoherence): 양자 상태에서는 여러 가능성이 겹쳐 있다. 그런데 그 상태가 환경과 부딪히는 순간, 그 겹쳐 있던 가능성들이 하나의 결과처럼 굳어져 버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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