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먼의 경로합

돌고 돌아, 쓰기로_내 삶의 경로합

by 리다

최단거리,

직선,

고전 물리에서 말하는

최소 에너지값들,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가는 입자는

가장 곧고, 가장 에너지 덜 쓰는 한 경로로 간다고 본다.


파인먼은 여기서 미친 소리를 한다.

“아냐, 양자 세계에서는

갈 수 있는 모든 경로를 다 간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단지, 우리가 보는 건 그 모든 경로를 다 더한 결과일 뿐이야.”


기다리던 아침,

휴대폰에 알람이 뜬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글 발행에 앞서 프로필에 '작가 소개'를 추가해 주세요!"


생기가 넘치는 문장들,

발랄한 누군가가 나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것 같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하 끝까지 무너져 내려서 글이라도 써야 했던 그런 시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글에 매달려 있었던 시절. 그때의 내 글들은 그 시절 함께했던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피가 튀고 눈물, 콧물이 흐르는 아비규환'이었다. 그래도 상처와 고통에서 나왔던 그 글들은 밖으로 꺼내어지고 안전한 누군가에게 읽힘으로 나에게 치유를 선사했다. 말 그대로 치유를 위한 글쓰기였다.


비록 읽기와 쓰기를 사랑해 왔지만 '쓰기'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내가 꺼내는 이 말과 글들이 과연 생명을 얻어 누군가에게 읽힐 가치가 있을까? 나만의 사변적인 글들이 세상에 하나 더해진들, 그저 세상의 소음에 0.0000001칸 정도의 볼륨을 더하는 일이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여전히 미련이 남아 글 주변을 맴돌았다. 쓰기 모임에 몸 담았고, 썼고, 쓰지 않았고, 쓴다는 것을 잊었고, 다시 상기했고, 그러다 외면했다. 마치 애정의 바이오리듬처럼 갑자기 희열에 찬 어느 날에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내 안의 내가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네 까짓게 글 쓴답시고."

누군가가 말했다.

"글쓰기요? 해보세요, 재미로.

당신의 소명은 글쓰기가 아니라 당신의 '일'에 있어요."


그렇게 수년간,

나는 '쓰기'를 잊었다.

그저 '살기'로 했다. 내가 보는 것들은 흩어졌고, 읽기를 중단했고, 인상들은 되도록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냈다.


파인먼의 경로 적분은 말한다.

“모든 경로가 한 번씩은 참여한다”


엔트로피가 세계를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든다면, 파인먼의 경로합은 그렇게 섞인 모든 경로를 다 더해 지금을 만든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길,

‘실패’라고 생각했던 선택,

포기했던 꿈,

스쳐간 일, 관계, 시도들…

이 모든 것들은 한 번씩 다 지나야 했던 경로들이다.


가지 않은 길처럼 보였던 것들도

사실은 내 안에서 한 번씩은 지나간 경로였고,

그 흔적들이 겹쳐진 끝에

현재의 '나'라는 한 줄이 남았다.

세계는 한 번도 한 길만 택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게 되는 건,

가장 진하게 남은 한 줄 뿐이다.


글을 쓰지 않던 시간도 쓰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다. 문장 대신 보고 듣고 버텨온 날들이 다 합쳐져서 지금 쓰는 문장의 진동수가 되어주었다.


양자세계에서라면 나는 아마 여전히

'쓰지 않는 나'와 '쓰는 나' 사이를 진동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우주의 한 점에서만큼은,

글을 쓰는 쪽에 서 보기로 했다.


이미 수많은 경로를 지나왔고,

앞으로도 또 셀 수 없이 많은 갈림길이 열릴 것이다.


오늘 갈림길 앞에 선 나는 이쪽 길을 택한다.


"돌고 돌아,

쓰는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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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적 경로합

입자는 한 길만 가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있는 모든 경로를 다 가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가 보는 하나의 경로는 그 모든 경로가 더해진 결과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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