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수영장 생활

슬기로운 끝

by 리다

원래 목표는 일 년을 채우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목표치에서 4개월을 더 채운 셈이다. 수영장 고인물 언니들에게서 마스터반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은 지는 꽤 되었고, 물찬제비였나 해찬들이었나 하는 동아리에 포섭하려는 압박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수영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일과 하는 운동이 일상의 루틴이 되었고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반복하는 중이다. 상사의 눈을 피해 틈틈이 블랙프라이데이, 생일, 그냥 입던 수영복이 지겨워서.. 등등 갖은 핑계로 쟁인 색색깔과 무늬의 수영복은 진즉에 열 벌을 넘겼다. 일상의 활력소, 사랑하는 일에서는 살짝 빗겨나가기 시작한 딱 그 자리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았다. 강습이 없는 이른 아침, 뒤늦게 사귄 동갑내기 친구의 얼굴도 볼 겸, 다른 운동이라곤 전무한 일상에 이거라도 하자라는 심정으로, 가장 큰 동력은 그저 내 몸에 입력된 루틴대로 어느덧 내 몸은 샤워장 안이고 비누를 몸에 문지른다. 기상과, 착의와, 수영장까지 가기 위한 운전과, 차에서 내려 샤워장까지 닿는 동안 잠깐의 보행이 모두 자율주행 모드로 이루어진다.

몸을 차가운 물에 담근다.

수영을 시작한다.. 출발, 한 바퀴, 두 바퀴, 내 호흡으로 천천히.. 몇 바퀴 돌지 않아 친구를 발견한다. 우리 둘은 떠든다. 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수영장에서는 낯설지만 어딘가에선 익숙한 실루엣. 뭐지? 이 기시감은? 수영복을 고르던 윈도 창 위로 내가 힐끔거리던 그 사람이다. 나의 직.속.상.사. 어설픈 몸짓을 보니 수영을 예전에 배우긴 배웠으나, 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의 목이 돌아간다. 아니다, 돌아온다. 내 쪽으로. 나는 친구와 말을 하다 말고 물속으로 잠수한다. 꼬르륵. 친구는 영문을 모르고 그런 나를 쳐다본다. 안녕, 친구야.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수영장 사무실에 들러 그 달의 수강을 취소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뭐 얼마나 길게 하겠어? 한 달 다니다 말겠지. 그때 다시 돌아올게. 의도치 않게 친구에게 거짓을 말한 셈이다. 6개월이 지난 지금의 나는 "돌아갈게."라고 썼다가 "돌아올게."라고 동사의 어미를 고친다. 이 새벽, 내 현재의 위치는 수영장이 아니라 지금 있는 침대 위 키보드 앞이다. 본진이 이미 바뀌어 버린 것이다.

글 쓰기 방(이제는 사교 모임 내지 거멍거멍 독서모임), 글친님이 사정을 듣고 진지하게 물어 오신다. "직장 상사를 만나게 된 것도 환불 사유에 들어갑니까?" 대답했다. "그냥 이사 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나는 기어이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것이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온 지 이년 차, 내 슬기로운 수영장 생활의 '슬기로운' 끝이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