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최고의 거장 1599~1660
모 항공사 CF에서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술작품이 하나 등장한다.
"... 이 그림. 학생 때 선생님이 그러셨지. 세계적인 거장들이 수백 차례나 패러디한 400년 전 천재의 작품...
공주의 초상화 속에서 화가는 우리를 보고 있고, 지켜보는 왕과 왕비는 거울 속에 숨어 있다...."
400년 전 천재의 작품.
작품의 이름은 <시녀들>. 그리고 그 천재 화가는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1660 )이다.
벨라스케스. 그는 루벤스, 램브란트와 함께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화가이다.
후일 고야, 마네 더 나아가 현대미술의 피카소, 달리 등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거장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스페인의 귀한 유산으로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펠리페 4세 국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왕실의 궁정화가였다. 후일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 작위까지 받을 정도로 세속적인 출세욕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슬픔과 삶의 애환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초상화에는 왕, 귀족부터 서민, 난쟁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고 인물의 성격과 내면이 과장 없이 표현된다. 그건 왕이나 서민들, 심지어 교황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그는 어떠한 도덕적 판단이나 비하 없이 균형 잡힌 시선으로 담담하고 기품 있게 인물들을 표현해 냈다.
바로크 미술의 다른 화가와 마찬가지로 그의 그림의 실체는 빛과 색채였다. 빛의 효과와 색채의 조절로 드라마틱한 작품이 완성했다. 인물들의 생동감과 입체감은 극대화되어 사실적이지만 편안하며 자연스럽고 깊이가 있다.
그의 시각적 사실성으로 그려진 <이노켄티우스 10세>는 최고의 초상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너무나 사실적인 교황의 모습에 어떠한 과장도 없다. 인물의 특징과 내면이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교황은 너무나 사실적 표현에 그다지 이 초상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후일담도 전한다.
아래 작품은 스페인 회화 역사상 최초의 누드화인 <거울을 보는 비너스>이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 스페인에서 여성 누드화를 그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여인의 뒤태만 노출하고 제목을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로 명명함으로써 이 죄를 교묘히 피했다.
여인의 부드러운 곡선과 살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큐피드가 들고 있는 거울을 통해 비너스의 얼굴이 어스름이 드러나 있지만 관객의 호기심이 상쇄되지는 않는다. 관객의 오감을 흔드는 천재의 수작임에 틀림없다.
벨라스케스의 최고의 작품은 앞서 잠시 언급했던 <시녀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지극히 흥미롭고 독특하다.
화가의 작업실이 무대이고 마르가리타 공주를 중심으로 공주를 수행하는 시녀들, 두 명의 난쟁이와 개, 왕의 시종으로 보이는 몇몇의 사람들, 화가 뒤편의 거울에 비치는 왕과 왕비 그리고 화가 자신이 등장한다.
작품 속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화가는 왕과 왕비의 초상을 그리는 중이었고 긴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주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공주가 뿔이 났다. 여러 명의 시녀들과 광대들 심지어 개까지 공주를 달래고 있다. 그림 속 화가의 캠버스에는 왕과 왕비만 그려지겠지만 관객에게 보이는 이 그림에는 왕과 왕비가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뒷벽 거울 속에 희미하게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그림 중심부의 공주가 있으나 그녀 역시 여러 등장인물 중 한 명일 뿐이다. 다양한 궁중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인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당당하게 등장하고 있는 화가 자신이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탁월한 빛과 명암, 구도 때문에 많은 인물의 등장에도 산만하지 않고 오히려 명암대비로 인해 각각의 인물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다. 화가는 인간에 대한 편견 없는 관찰로 각자의 개성과 내면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이 그림 밖을 보고 있고 결국 관객과 마주 보는 이 독특함이 이채롭다.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명작이다.
혜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