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낭만주의 미술의 거장 1746~1828
이 그림.
같은 모델, 같은 포즈의 두 번의 그림. 게다가 한 번은 옷을 입고 한 번은 옷을 벗고. 흔치 않은 일이지요. 18세기 유럽에서 그것도 독실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여성의 누드를 그린 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보다 전세대인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이래 스페인 역사상 두 번째 누드화였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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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인은 당대 최고의 관능미의 상징인 알바 공작부인이라는 설이 있었습니다. 알바 공작이 부인의 누드화 소식을 듣고 분개해 화실로 쳐들어 왔을 때 유유히 옷 입은 그림을 보여주며 위기를 모면했다는 재치가 전해져 오는 이 그림.
그림의 제목은 <옷 벋은 마하>, <옷 입은 마하>. 화가는 파격적이며 강렬한 수많은 걸작을 남긴 18세기 낭만주의 미술의 거장 프란체스코 고야 (1746~1828)입니다.
프란체스코 고야는 1746년 스페인의 푸엔데토도스에서 태어났어요. 15세경부터 호세 루산이라는 화가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스페인 왕립 아카데미 시험에 계속 낙방하여 이탈리아로 떠났지요. 거기서 수학을 한 고야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궁정화가가 되었어요. 그 뒤로는 그의 뛰어난 재능에 많은 지체 높은 귀족들이 고야의 모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유명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고야는 앞에서 언급한 알바 공작부인과 20살의 나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고야의 어떤 매력이 지체 높은 여인의 마음을 빼앗았을까요. 알바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 몇 년 동안 집중적으로 고야의 모델로 그림 속에 등장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모델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고 있지요. 거기엔 'solo Goya(오직 고야뿐)'이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만큼 둘은 열정적인 사랑을 했던 거 같아요. 알바 부인에게는 얼마 안 가서 다른 애인이 생겼지만 죽을 때까지 이 글 표지 배경으로 쓴 고야의 자화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마 평생 마음속 깊이 고이 간직하고픈 사랑이었나 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사랑이 결국은 끝이 나고 고야는 심한 비탄에 빠집니다. 사랑이 진하고 뜨거웠을수록 헤어짐의 쓰라림은 더 가혹하지요. 설상가상으로 심한 병에 걸리게 되고 그 후유증으로 청력까지 잃게 되면서 고야의 그림은 이전과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고야는 고통을 겪어 내면서 세상을 향한 시각이 바뀌었나 봅니다. 사회의 부조리와 비극에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궁정화가 신분이었지만 비극적인 많은 사건들을 화폭에 담고 세상에 알렸습니다.
위의 그림은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라는 작품입니다. 민중을 학살하는 군인들의 만행을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 때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대혁명으로 인해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시민의식이 싹터 근대사회로 도약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나 스페인은 아직 강력한 왕정국가였고 부패한 권력과 종교로 인해 시민의식이 발현되지 못하던 상태였지요. 고야는 나폴레옹을 지지했어요. 스페인 역시 근대사회로의 변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계몽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개혁이 스페인에서도 영향을 끼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침공하자 고야는 실망했습니다.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는 스페인을 침공해 많은 학살을 자행한 나폴레옹 군대를 고발한 작품입니다.
고야는 이 후에도 여러 작품을 통해 당시 스페인에 만연해있던 부패한 권력과 교회, 그로 인한 도덕의 부재, 건강하지 못한 사회문제들을 신랄히 비판했습니다. 아직도 행해지고 있던 마녀사냥식의 종교재판을 비롯해 잔혹한 사회분위기도 고발했습니다.
<잠자는 이성이 괴물을 깨운다>라는 판화 연작은 이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1797년부터 2년에 걸쳐 80여 점의 판화작품이 만들어졌지요. 부정과 부패에 대해 사람들이 이성으로 그 그름과 부당함을 판단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우리는 괴물의 탄생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겠지요. 살아있는 지성으로서의 고야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검은 그림들(Black Paintings)' 이 나온 것도 이 즈음입니다.
고야는 자기 집의 벽면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하고 그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들은 섬뜩하고 괴기스럽고 광기로 가득했죠. 총 14점의 그림이 벽화로 남아있습니다. 인간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잔혹함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지요. 고야는 그 누구에게도 이 그림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고 보여주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의 광기를 그림으로 표출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검은 그림들'의 느낌을 가장 잘 설명해 드리기 위해 아래 그림 두 편을 소개합니다. 두 그림은 시기만 다를 뿐 같은 장소, 같은 사건을 그린 것이지요. 성 이시돌의 축제와 그 축제를 가기 위한 순례행렬을 표현한 것입니다. 둘의 극명한 차이가 충격이지요. 두 그림은 약 30여 년의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이 고야는 다른 인격의 사람이 된 것 같네요.
고야는 오래전 초상화를 그릴 때부터 검은색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죠. 주로 배경은 검게 표현하여 모델의 모습을 더 부각하는 기법을 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검은색은 '스페인의 검은색'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검은색이 14점 그림 전반에 깔려 음침함과 괴기스러움, 광기를 어둡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예술가는 민감합니다. 자기 내면과 세상의 변화에 항상 깨어있는 사람들이죠. 특히 고야는 극적인 자신의 삶을 작품을 통해 여과 없이 풀어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거칠 것 없이 강렬합니다. 또한 과연 이것이 한 사람의 작품일까 할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항상 깨어있었던 고야.
열정적인 사랑에 자신을 던졌던 고야.
병든 세상과 그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성으로 직시했던 고야.
그래서 그의 작품과 인생은 한없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가 봅니다.
혜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