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 그리고 클로델

그 처절한 사랑과 치명적인 숙명

by 혜람


로댕 <키스> 1898년작

타이틀에 소개된 작품은 <키스>이다. 제목만큼이나 강렬하다. 마주 안고 있는 연인의 열정이 완벽한 구도속에 녹아있다. 그리고 손을 보라. 서로를 향한 간절함과 순간에 몰입된 뜨거움이 있다. 흡사 같은 제목의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 속 그 손이 연상된다.


로댕<다나이드>1889년

위의 작품은 <다나이드>이다.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한 다수의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 속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나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우스(Danaus) 왕의 딸을 의미한다. 다나우스에게는 50명의 딸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신탁에서 자신의 사위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이에 왕은 딸들을 시집을 보내면서 하룻밤만을 보내고 남편을 죽일 것을 명한다. 이에 한 명의 딸을 제외한 49명의 딸들이 모두 남편을 죽이게 된다. 그래서 <신곡>에서 묘사한 바에 따르면, 지옥에 간 다나이드들은 모두 결코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퍼 나르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은 다나이드를 로댕은 끝없이 노력하지만 목적을 이룰 수 없어 절망에 찬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지극히 섬세하고 유연한 선이 여인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흩어져있는 머리칼 끝까지 이어진다. 그 생동감에 부드러운 살갗의 온기까지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그 형벌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로댕 <영원한 우상> 1889년작
카미유 클로델 <내맡김-사쿤탈라> 1888년작


손이 뒤로 결박된 채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 남자. 이 파격적 작품은 <영원한 우상>이다. 이 작품은 로마시대의 역사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의 '시몬과 페로'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늙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빨고 있는 파격적인 모습이다. 보는 이들의 경악을 자아내는 모습이지만 여기엔 사연이 있다. 반역죄를 지은 한 노인에게 감옥 안에서 굶어 죽게 하는 형벌이 내려졌다. 먹을 것을 가져오면 안 된다는 조건으로 오직 가족에게만 면회가 허용되는 상황에서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딸이 날마다 아버지를 찾아와 젖을 물렸다. 아버지는 인간적인 본능으로 어쩔 수 없었다. 딸 역시 극형을 감수하고 아버지를 살리고자 하는 효심이었고 결국엔 이 모든 사연이 밝혀지면서 효심에 감동한 나라에서 노인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작품은 1년 전 발표된 클로델의 <내맡김-사쿤달라>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은 작품이다. 그녀의<내맡김-사쿤달라>는 1888년 살롱 최고상을 받았다. 세간에서 로댕이 손봐준걸로 의혹의 눈길을 보냈을때 로댕 자신이 나서서 의혹을 부인하고 클로델의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혀준 일화로 유명하다. 그런 로댕이 표절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클로델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카미유 클로델 <중년> 1897년작

다른 여인과 떠나는 남자를 또 다른 여인이 애절하게 잡는다. 사무치는 애닲음이 닿을 듯 말 듯 뻗은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남자는 앞으로 시선을 향하지만 손은 뒤에 남은 여인을 향해 뻗으며 주저함을 나타낸다. 떠나는 이의 갈등도 남겨지는 이만큼 아프다. 서로 다른 형태로 이별을 맞닥드리지만 그 처절함은 그와 내가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은 로댕과 클로델의 이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카미유 클로델의 <중년>이다.


로댕 < 챙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는 카미유 클로델> 1911년작

깊은 심연의 사유 속 여인, 고요하고 우수에 차고 지적이며 침착하다. 카미유 클로델이다. 이 작품은 둘의 파경 후에도 클로델을 기억하며 만든 로댕의 작품 중 하나이다. 로댕은 그녀를 깊은 사유 속의 신비스러움으로 표현했다.

둘은 예술적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다. 많은 나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클로델의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천재성은 로댕을 사로잡았다. 둘은 서로에게 빠져 들었다. 격정적인 사랑과 작품으로의 몰두는 여러 편의 걸작을 만들어 냈다. 로댕의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클로델은 작품의 공동제작자였다. 당시는 여성이 미술을 포함한 예술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거의 클로델이 최초였다. 그녀는 아무도 가지 않은 험난한 길을 치열하게 걸어갔다. 열정적이고 번뜩이는 예술혼을 지닌 그녀는 로댕과의 시절 동안 자기의 모든 걸 다 태운다. 로댕이 떠난 후에도 한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여성작가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실연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점점 시들어간다. 거기에 아버지의 사망과 의지했던 동생의 국외이주로 고립감과 상실감이 극에 달해 자기 작품을 부수는 등의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은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수용돼 어떠한 작품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쓸쓸히 남은 생을 마감한다.


미켈란젤로 이후 서양 최고의 조각가로 인정받는 로댕, 그와의 작품활동과 사랑으로 더 유명했지만 최근에는 유수한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더 조망받는 카미유 클로델. 둘의 그 치열한 사랑과 삶은 마치 숙명과도 같았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남아 있는 작품들이 둘의 이야기를 오늘도 처연하게 전하고 있다. 긴 여운과 함께.


오귀스트 로댕 1840~1917
카미유 클로델 1864~1943



혜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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