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의 집대성 라파엘로 작 1509-1510
웅장한 대리석 건물 안에서 그들의 철학과 사상만으로도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사색에 빠져있는 이 작품. 그들로부터 수학하고 토론하고 습득하는 데만도 수십 년은 족히 걸릴 이 위대한 학당에 내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찬 작품. 바로 르네상스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인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다.
이 작품은 교황 율리로 2세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이다. 가로 약 820cm 세로 약 580cm 의 벽면에 총 54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테네 학당 건물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모티브로 그려져 있고 벽기둥의 조각품은 그림을 바라봤을 때 왼쪽이 아폴로 신, 오른쪽이 아테네 여신이다. 각각 예술과 지혜를 상징한다.
프레스코 벽화
인류 회화사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의 기술 혹은 형태로 여겨진다. 본래 뜻은 회반죽이 마르기 전, 이탈리아어로 프레스코(신선)할 때 물로 녹인 안료로 그리는 기법의 벽화를 가리킨다. 이에 반해 회반죽이 마른 후 그리는 기법을 세코(Secco), 어느 정도 마른 벽에 그리는 것을 메초 프레스코(Mezzo Fresco)라고 부르지만 이들 기법은 확실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이 작품은 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두 철학자의 모습이 중심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서양 철학과 신학에서 플라톤을 빼고는 어떤 이야기도 전개할 수 없다.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이다. 철학과 연결된 신학에서도 플라톤은 뿌리가 된다. 아낙시만드로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영원불멸의 존재 개념을 플라톤은 그의 이데아론에서 영원불멸한 완성체인 일자(一者)로 이야기했고 이는 후일 플라티노스와 아우구스티누스로 이어지면서 교부철학의 뿌리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일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영향을 주어 스콜라철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 작품에는 그리스 철학의 양대산맥인 두 철학자와 더불어 이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에피쿠로스, 디오게네스 등 유수한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또한 유클리드, 조로아스터, 플로티노스등도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 왕과 까메오로 등장하는 라파엘로 자신의 모습도 귀퉁이에 보인다.
시공을 초월한 철학과 사상의 향연. 놀랍고도 위대한 작품이다.
여기서 잠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해 조금 더 언급한다.
플라톤 ( BC 428 ~ 347 추정)
플라톤은 그리스 아테네의 명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그는 후일 현대 대학의 원형인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해 많은 인재를 가르쳤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 그의 저서 <향연>, <국가>, <변명> 등은 모두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와의 대화 형식으로 기술되었다. 그가 살았던 당시 그리스 아테네는 민주정부 아래서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플라톤은 민주정부에 의해 스승 소크라테스가 처형되는 아픔을 겪으면서 민주정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갖게 되었다. 이런 인간 세계의 환멸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에 몰두하였고 오직 인간의 이성으로만 인지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이데아 세계에 대한 그의 철학을 확립했다.
인간의 이성으로만 인지할 수 있는 사변적인 세계인 이데아는 영원하고 불변한다. 이는 인간 세계의 특징인 가변적이고 감각적인 모습과 완전히 상충되는 개념이다. 진리는 오직 이데아 세계에만 존재하고 인간세계인 현상 세계는 이데아를 끊임없이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물이라도 그 근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데아는 사물마다 분여 되어 서로 다른 크기만큼 들어가 있다. 이것이 이데아의 분여 이론인데 이것으로 인해 이분법적인 경직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연성마저 확립되었다. 이렇게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과 감각에 의한 세계에 대해서도 가치를 부여했다.
아리스토텔레스 ( BC 384 ~ 322 )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자 왕자 시절의 알렉산드로스 왕의 스승이었다. 그리스 북쪽의 스타게이로스에서 출생했고 플라톤의 학교에서 수학했다. 후일 아테네 동부의 리케리온을 세웠고 소요학파의 기원이 된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했다. 이데아론은 단지 사변적으로만이 다가갈 수 있는 세계이지만 현실의 세계는 이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개별 사물들은 '그 자체'인 이데아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형상과 질료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질료와 형상은 따로 분리되어 생각 되어질 수 없고 함께 결합해 존재하고 있는 개념이다.
이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 생물학, 동물학, 심리학, 정치학, 윤리학, 논리학, 형이상학, 역사 등 많은 분야를 연구했지만 논리학과 동물학 분야의 연구가 가장 큰 업적으로 여겨진다. 특히 그의 삼단논법론은 현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저서로는 대부분이 유실되었으나 <형이상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시학>, <범주론>등이 남아있다.
혜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