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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람 Nov 09. 2017

고래

인생의 대 서사시                    천명관 저


대단한 이야기꾼인 천명관 작가의  <고래>

두 여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탄탄한 스토리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빠른 전개로 풀어낸 소설이다. 첫 장부터  놀라운 흡입력으로 눈을 뗄 수 없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탈진을 경험할 정도의 몰입력을 가지는 이야기.





이 글의 주인공은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이다.

두 여인의 굴곡 많은 삶이 이 소설의 뼈대이다. 특히 금복의 인생 여정은 그녀의 사업 성공 과정과 더불어 놀라울 만큼 왕성한 남성편력이 결합되어 숨고를 틈 없이 빠르게 전개된다.


금복은 자신이 태어난 산골마을에서 무작정 생선장수의 트럭을 타고 도망치듯 나왔다. 더 큰 세계에 대한 목마름이었다. 작은 생선가게로부터 시작한 그녀의 사업은 특유의 수완으로 나날이 발전한다. 그녀는 남발안에선 벽돌공장으로 다시 평대에서는 극장으로 사업을 이어나간다. 중간중간의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면 돌파하는 그녀의 뚝심과 주위의 조력으로 사업은 번창하게 된다.



그녀는 산골마을에서 도망쳐 생선장수 트럭을 타고 항구로 온 후 처음으로 고래를 본다. 그 거대한 존재의 솟구치는 생명력은 그녀의 평생을 지배하는 운명이 되었다. 그녀는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들어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그와 더불어  한 여성으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본능에 철저히 솔직함으로 일관했다.  그녀는 숙명처럼 다가오는 많은 남성들을 받아들였끊임없는 남성 편력은 그녀의 왕성한 생명력 원천이기도 했다. 그녀의 주위엔 생선장수, 걱정, 文, 칼자국 등의 남성들이 등장하고 그녀와 사업을 조력하지만 결국은 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파란만장한 금복의 주변 인물들 중 특히 칼자국에 대한 묘사가 재밌다.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이고 상대가 없는 칼잡이이자 호가 난 난봉꾼이고 항구 모창녀들의 기둥서방인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


금복과 걱정 사이의 딸인 춘희는 기골이 장대한 아버지만큼이나 큰 체격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 금복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므로 벽돌 전문가인 文과 또 다른 등장인물인 쌍둥이 자매의 코끼리와만 교감한다. 후일 평대 극장의 방화범으로 오해받아 오랫동안 옥살이를 하고 출소해서도 자신의 뿌리 같은 벽돌공장으로 돌아와 홀로 벽돌을 구우며 인생을 마무리한다.




이 소설에는 생경한 단어가 무수히 등장한다.

작가의 어휘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미만(널리 가득 차 그들먹함), 가량맞다(조촐하고 격에 맞지 않다), 강퍅하다(성격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다), 호가 나다(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고아하다(예스럽고 아담하다), 해사하다(얼굴이 희고 곱다랗다) 등등 생경한 어휘를 검색하면서 책을 읽는 재미도 솔솔 하다.


또한 수많은 법칙들도 소개된다.

세상의 법칙, 무지의 법칙, 사랑의 법칙, 구라의 법칙, 생식의 법칙 등등 세어보니 약 33개의 법칙이 나오는데 이를 다 공감한다면 인생을 촘촘히 살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엔 개망초가 많은 메타포로 등장한다.

남발안의 벽돌공장처음 금복이 도착했을 때도

형무소에서 나온 춘희가 회귀하듯 그곳으로 돌아갔을 때도 그곳은 개망초 천지였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

고난과의 화해

인생과의 화해

죽음과의 화해.

가만히 들여다보면 국화처럼 향의 깊이가 있지만

우리 주위에 지천으로 깔린 평범함을 동시에 지닌 꽃. 특별함과 평범함, 유한함과 무한을 영리한 모습 안에 동시에 가지고 있는 꽃. 반복되는 삶의 파란함과 끊임없이 화해하며 질기게 살아가는 두 인생의 은유인가.


금복과 춘희, 또 앞서서는 평대의 국밥집 노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인들의 파란만장함이 흡사 마르케스의 <백 년간의 고독>을 연상시킨다.

그들의 인생이 막을 내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그 여운이 먹먹함으로 오래 동안 느껴진다.


인생을 살아가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개망초

혜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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