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Essais P.88에서
"우리가 도망치면 그 모습을 보고 적이 더 집요하게 따라붙는 것처럼, 우리가 그 앞에서 두려움에 떨면 고통은 더욱 고개를 쳐든다. 그 앞에서 당당히 맞서는 이에게 고통은 훨씬 더 고분고분하게 군다. 그러니 있는 힘껏 고통에 맞서야 한다."
이 문장은 현재 Essai라는 글쓰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몽테뉴의 에쎄에서 나온 것이다.
정신질환(스트레스질환) 때문에 정신과 약을 오랫동안 복용해 온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몸이 늘어져서 매번 괴로움을 느낀다.
직장인이 아니고 삶을 며칠 앞둔 노인이라면 몸이 늘어지면 마음 놓고 그냥 편하게 누워 잠을 푹 잘 수 있을 텐데 한창 돈을 벌어야 하고 노후준비를 해야 하는 중년이기에 이 몸이 늘어지는 무기력함은 상당히 괴롭다.
눕고 싶은데 누울 수도 없고 일은 해야 되니 말이다.
거기다 잠도 종일 쏟아져서 그걸 참아내느라 몸과 마음이 참 고생이다.
기껏 내가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사무실 밖에 나와서 바람 부는 걸 느끼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햇살을 받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그 무기력함과 졸음은 나를 아무것도 못하게 꽁꽁 붙들고 만다.
이래서 이것들을 도저히 극복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할 자신이 없다.
이러던 차에 집에 있던 몽테뉴가 쓴 Les Essais 책이 눈에 들어와 장마철이라 비 온 후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밤에 이 문장을 읽게 되었다.
그 문장을 접한 순간 내 머리가 정신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무기력함 앞에서 너무 소극적으로 대하고 또 무기력함에 한번 맞서 볼 생각을 해보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살면서 온갖 어려움이 닥치고 또 경험을 해왔는데 몸을 나른 나른하게 하는 이 무기력함 따위에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준다니 안 될 말이다.
잠이 스르륵 오게 하는 이 무기력함을 적극적으로 맞설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또 나름대로 그 하루하루를 버티고 버티고 오늘을 또 맞이하는 건데 겁먹을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내가 평상시 사무실이나 집에 책상에서 웬만하면 앉지 않는다.
앉으면 바로 무기력감이 날 휩싸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정신 차리려고 일어서서 왔다 갔다 하곤 한다.
마치 잠을 안 자기 위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 문장에서 나오듯이 내가 소극적으로 대하면 더더욱 잠결에 비몽사몽이 될 것이며 적극적으로 맞서면 이 무기력함이 나를 무기력하도록 만들 힘을 잃게 될 것이란 걸 믿는 게 필요하다.
마치 성서에 나오는 말이 진리인 것처럼... 이 문장도 몽테뉴의 깊은 사색에서 나온 글이기 때문에 고전의 힘도 진리라고 믿는다.
이 나른 나른함은 좋게 말하면 내 몸과 마음이 힘들었으니 좀 쉬라는 의미로도 느껴진다.
그러나 좋은 의미지만 나에겐 해야 할 일 즉, 일과 운동과 공부를 해야 하기에 편히 쉴 수많은 없는 현실이다.
그 나른함 조금만 느껴서 스트레스성 긴장을 풀고 나머지 모든 힘은 내 할 일에 써야 한다.
사람이 산다는 게 나름 이처럼 힘듦의 연속임은 사실이다.
그래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으니 그것 때문에 사람은 힘들어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내게 희망은 노후에도 내 능력으로 밥벌이하는 거 그거 하나이다.
왜냐하면 난 남들보다 자유롭게 살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사고 싶은 거 사면서 사는 솔로인 대신 가족이 없기 때문에 내 노후는 내가 책임져야 되기 때문이다.
또 내 능력을 노후에도 써서 얻는 그 즐거움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