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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06. 2024

허무주의자가 살아가는 이유

[철학]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 - 박이문

 인생을 살며 우리는 참으로 많은 허무함을 느낀다. 학창 시절부터 수년간 공부했던 입시가 단 하루 만에 결정된다는 사실, 오랫동안 쌓아왔던 애인과의 유대가 말 몇 마디로 인해 깨진다는 사실, 행복하기 위해 꾸린 가정이 되려 나에게 불행을 가져준다는 사실 등. 우리의 삶 도처에서 허무는 시시각각 기회를 보며 우리를 좌절시킨다.


 그러나 여기 스스로를 행복한 허무주의자로 칭하며 허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에 대해 깊이 탐구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의 유명 철학가이자 시인인 저자 박이문은 책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에서 행복과 허무의 양립,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허무를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20대 때에는 ‘우울한 허무주의자’ 30~40대 때에는 ‘철학적 허무주의자’ 그리고 노년기에는 ‘행복한 허무주의자’라고 스스로 생각했다고 한다. 우울과 철학은 허무와 잘 어울려 보이지만, 행복이라는 단어가 허무와 같이 쓰이니 어쩐지 많이 어색하다. 사실 요즘 너무 철학에 관련된 책만 읽어 머리가 복잡해진 상태라 가벼운 책을 읽으려 도서관 에세이 칸에 갔는데, 제목에 이끌려 고른 이 책 역시 철학에 관련된 도서다. 아무래도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허무주의자에게 삶의 의미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사고력의 존재 여부다. 동물에게 삶의 의미란 단순한 생존에 불과하다. 다른 동물보다 더 행복한 가정을 꾸리거나 서울에서 더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는 욕망은 동물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본능에 따라 충실하게,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동물들의 삶을 보며 인간들은 이들의 삶이 허무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무의식과 의식이 결합해 본능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동일시 하는 동물들의 삶보다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괴리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매일 고민하는 인간의 삶이 더욱 허무하지 않은가? 왜 사냐고 물었을 때 길고양이는 ‘살기 위해’라고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못한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의 의식을 미다스 왕의 손으로 비유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뀌는 미다스 왕처럼 인간의 의식이 닿는 모든 행위는 모두 의미로 변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즉,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듦과 동시에 자신이 만들어낸 ‘의미’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찾아내야 하는 비합리적인 존재다.


 한번 생각해 보자. 자연의 입장에서 과연 인간의 법과 제도, 선과 악, 전쟁과 평화라는 단어가 과연 가당키나 할까? 내 집 마당에서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와 자연을 수호하는 존재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우스워하진 않을까? 우리 인간은 철저하게 인간의 시각으로 세상을 규정하고, 현상을 바라보며 인간이 부여한 의미만이 절대적 가치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참으로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자연을 자신과 대립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식 대상으로 설정하게 되었으며, 자연을 자신의 편리한 사고의 틀 맞추어 갈기갈기 찢고 갈라놓은 다음 자신의 의지를 무기로 삼아 신의 욕망을 위해서 정복하고 소유해 왔다. 이와 같이 볼 때 인간 역사란 인간이라는 동물에 의한 자연 약탈의 비극적 이야기로 풀이된다. P.140

 

허무주의자들이 등장한 이유는 이러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하기 위함이 아닐까. 자신의 손에 닿아 의미를 갖게 된 것이 이 세상의 전부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대적 가치를 가진 ‘의미’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식물과 동물, 자연과 우주, 그리고 신과 내세의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모든 현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며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이해하려는 운명에 놓였다.


 즉, 허무주의자에게 허무란 모든 의미를 부정하며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극히 제한적 시각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절대적인 의미와 본질에 대해 다가갈 수 없음을 한탄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인생 전부를 바쳐 고뇌하는 괴로운 운명. 그것이 허무주의자가 말하는 인간의 저주받은 삶이다.




허무에 열정 붓기


 그렇다면 이토록 저주받은 삶에 놓인 우리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모든 의미를 부정하며 원초적 본능대로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모든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끝없는 지식을 탐구해야 하는가?     

글쓰기를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은 저자는 글쓰기의 운명이 이카로스의 운명과 같다고 말한다. 초로 만들어진 이카로스의 날개는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빨리 녹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카로스는 태양을 향해 날아야 한다는 내적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발광하는 전기 파리채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삶. 그것이 글쓰기의 운명이라고 본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의 운명이 인간의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끝에 도달할 수 없는 글쓰기라는 행위는 우리의 불분명한 삶과 일맥상통한다. 살아있는 한 우리 인간은 삶의 진리와 인간의 존재 이유, 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의 의미에 대해 반추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떠한 탐구적 욕망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괴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면 열정적으로 살아는 편이 더 낫다.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이라고 지은 것도 위와 같은 생각 때문일 것이다. 끝없는 우주 속 우주먼지보다 작은 존재라는 사실에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이처럼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살아도 별문제 없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허무한 운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자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바위를 올리는 일이 허사인 줄 알면서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시포스와 같이, 비록 내 작업이 헛된 노력으로 끝난다 해도 나는 그 일을 지속하리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의 삶의 의미를 파편적으로나마 느끼기 위해서만이라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또 쓰리라 p.143


 책을 읽으며 철학적 글쓰기와 문학적 글쓰기에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박이문 철학가에 대한 경의가 벅차올랐다. 나는 지금껏 모든 현상에 대해 불평불만을 토로하며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왔건만, 허무의 참뜻은 그토록 허무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은 뒤에 저자가 궁금해서 그의 배경을 찾아본 건 오랜만이다. 아마 이 책과 그의 사상이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나 보다. 밑의 내용은 네이버 <인생스토리>에서 취재한 박이문 철학자의 생전 인터뷰의 일부다. 인생이 허무해지고, 삶이 답답해질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며 내가 쓴 글을 다시 찾을 것 같다. 오랜만에 최애 도서의 순위가 바뀌는 순간이다.




- ‘허무주의자’라고 말하면서 막상 하고 싶은 건 많으니 모순된 건 아닌가 하는 시선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니체나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은 실존적으로 허무주의적 인간의 존재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았어요? 저도 그래요.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은 인생을 비관하거나 절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비인격적, 비의인적 세계관에 입각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열정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지요.  - 박이문 인터뷰 중


- 허무주의자는 ‘모든 것은 결국 의미가 없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단순하게 말해서 그냥 내 인생 자체에는 궁극적인 의미가 없기 때문에 허무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녀요. (...)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살지 않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궁극적인 의미나 목표가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매 상황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습니다. 큰 숲보다 풀 한 포기에 집중하는 것처럼요. 사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큰 숲도 이루어지는 거고요.  - 박이문 인터뷰 중

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7062&cid=59013&categoryId=59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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