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비딕』 - 허먼 멜빌 (자화상,2020)
언어란 참 신묘하다.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해도 비슷하게 생긴 단어를 갖다 붙이면 얼추 비슷한 의미로 전달되기도 하고, ‘지양’과 ‘지향’처럼 음절 하나만 달라져도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이런 언어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그 힘을 남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최근 지인에게 선물 받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고 난 뒤부터 였다.
집념과 집착에 대한 단상은 <모비딕>을 읽기 전에도 몇 번 했었던 것 같은데, 대게 사랑에 대해 생각했을 때 그랬다. 사랑에 집념을 갖고 살아가는 말과 사랑에 집착하며 살아간다는 말은 비슷한 의미지만, 전혀 다르게 느껴졌고, 나는 그 사랑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집념과 집착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집착하는 이를 안쓰럽게 쳐다볼까. 나는 그 답을 <모비딕>의 등장인물 “에이허브”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 ‘이스마엘’이 고래를 잡는 선원이 되기 위해 포경선 ‘피쿼드호’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같은 배에 탄 30여 명의 고래잡이들은 모두 고래를 잡기 위한 집념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는 고래에서 나오는 값비싼 기름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부족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는 삶에 대한 불꽃을 느끼기 위해,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로 향한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그들의 몸과 마음은 오직 고래를 위한 집념의 결정체와 같으니.
“나는 왜 고래를 잡기로 마음먹었을까. 사실 그 이유는 나조차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무슨 일을 할 때 뚜렷한 이유를 댈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처럼.” P.15
그러나 이 배에는 고래에 대한 집념이 아닌 ‘집착’으로 가득 찬 인물이 있는데, 바로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허브’다. ‘모비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흰 향유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은 그 누구보다 모비딕에 대해 강한 집착을 하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성공적인 항해에 대한 명예도, 포경의 전리품인 기름도 아닌 오직 모비딕에 대한 복수다. 모비딕의 옆구리에 저주의 작살을 꽂는 것 외에 에이허브의 남은 인생을 대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비딕에 대한 복수로 머릿속이 가득 찬 에이허브는 자신의 집착을 해소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며 모비딕을 찾아 헤맨다. 그는 항해 중 만난 다른 배들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도움을 주어야 할 상황에도 모비딕과 관련된 소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배를 멈추지 않고 철저히 무시한다. 과도한 집착이 광기로 변하는 과정이다. 선장은 자신의 집착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자신을 파괴하고 있음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지만, 이를 멈출 수 없다. 집착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와 같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집착에 대한 보상 심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전속력으로 달려라. 그리고 눈을 똑바로 뜨고 망을 봐라. 부서진 노를 모으고 보트를 수리하라. 남은 작살의 날을 갈아라. 그놈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이 세상을 열 바퀴 아니, 스무 바퀴라도 돌겠다. 그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P.280
마침내 모비딕을 발견한 피쿼드호 일행은 고래와의 전쟁을 준비한다. 곧 용감한 바다의 전사가 될 수 있다는 자긍심과 한평생 자신을 괴롭혔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들의 사기는 그 어떤 순간보다 격하게 고양된다. 하지만, 모비딕을 포함한 모든 포경 활동은 도살이자 학살에 불과하다. 그들이 그려낸 숭고한 전투와 아름다운 희생은 모두 인간의 헛된 망상일 뿐이다. 인간에게 포경 활동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행위의 일부일 뿐이지만, 고래에게 포경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다. 모비딕은 괴물이 아니다. 그저, 다른 고래보다 몸집이 크고, 지능이 높은 향유고래일 뿐이다. 모비딕을 괴물로 만든 건 인간이다. 모비딕이 괴물이길 바랐던, 괴물이어야만 했던 인간 때문이다.
“40년 동안을 나는 바보처럼 살았어. 그렇게 고래를 잡고서도 과거보다 재산이 많아지길 했나, 더 나아진 게 있나? 다리를 하나 잃고 나니까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 그래서 이 사냥에 나섰지. 하지만 오늘 느꼈어. 난 이제 늙었어. 정말 지쳤다고.” P.258
집념은 때론 인간을 지치게 만들지만, 스스로를 성숙하게 만들곤 한다. 적절한 집념은 삶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좋은 땔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집착은 인간의 시야를 좁히고, 초조함에 좇기는 삶을 만들어낸다. 집착은 대체로 쉽게 제어할 수 없고, 심한 경우 에이허브와 같이 삶의 방향키를 빼앗을 수 있다. 과대한 의미 부여가 만든 집착의 환상은 결국 거짓된 진실을 낳을 뿐이다.
집착의 말로는 항상 좋았던 적이 없다. 삶에 대한 목표든, 타인과의 경쟁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모든 집착엔 후회와 미움만이 남는다. 집념과 집착의 한 끗 차이는 아마 ‘자아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끊어내지 못해 고통받는 것. 물론, 자아란 녀석이 내 생각처럼 움직여주는 것도 아니고,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마음속에 존재하는 모비딕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면, 이제는 놓아주는 게 어떨까. 바다의 아름다움은 고개를 치켜들어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