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민음사,2008)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찰은 언제나 ‘모르겠음’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모르겠다는 결론은 그 어떠한 대답보다 흥미롭고 따분하다. 어제 느낀 사랑과 오늘의 사랑은 전혀 다른 대상을 향하고, 네가 느낀 사랑을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모르겠다. 그것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근사치의 대답이다.
글의 제목인 ‘덧없고 변하기 쉬우며 불안정하고 미묘한 사랑’은 민음사에서 발간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작품 해설에서 따왔다. 모르겠다는 마음을 한껏 세련되고, 상세하게 풀어낸 김남주 번역가의 해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을 포함한 무형의 감정들을 설명하기에 이처럼 매혹적인 표현은 지금껏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랑의 불확실성 앞에서 방황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소유할 수 있다 착각하며, 누군가는 전력을 다해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했다. 실내장식가인 서른아홉의 여주인공 ‘폴’은 오랜 연인 ‘로제’와 안정적으로 비치는 사랑을 나누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연인 간의 안정적이고 정서적인 교류를 원하는 ‘폴’과 달리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로제는 폴을 ‘안정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대상’으로 여긴다. ‘로제’는 ‘폴’과 사귀고 있음에도 다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등 갑의 위치에서 ‘폴’을 ‘소유물’로 인식하며 이기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순간 그녀는 로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 자기 집까지 올라오지 않으리라는 것, 이 모든 것이 그가 기득권자로서 갖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취한 조심스런 행동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폴은 차에서 내린 다음 나직하게 잘 가."라고 인사 하고는 길을 건넜다. 로제는 즉각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P.92
그러나 ‘폴’은 ‘로제’가 필요했다. 아니, 불확실한 사랑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녀의 소망에 응하듯 ‘시몽’이 나타났다. 스물다섯 살의 젊고 유능한 변호사 ‘시몽’은 나이 차가 많음에도, 이미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폴’은 맹목적으로 발산하는 ‘시몽’의 사랑을 의심하지만, ‘로제’에게 느끼지 못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그와 교제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감정은 불확실하다. 마치,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자신조차 모르는 것처럼.
“그런데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더라고… 믿어져?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도 없다는 게…" P.70
작중 내내 ‘폴’이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한 것과 ‘브람스를 좋아하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한 것은 마치 자신의 사랑에 대한 불분명한 대답처럼 느껴졌다. ‘시몽’을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4살이라는 나이 차로 인한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폴’은 감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에겐 현실적으로 알맞아 보이는 연애 상대 ‘로제’가 있었고, 그를 사랑한다고 '믿어야만' 했다. 그와 함께한 감정적 교류가 사랑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P.139
결국 ‘폴’은 ‘로제’를 택한다. 선택의 이유는 결코 사랑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이는 독자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폴’의 덧없고 변하기 쉬우며 불안정하고 미묘한 사랑은 오직 ‘폴’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선택한 사랑은 ‘모르겠음’의 선택지 중 가장 알 것 같은 사랑이다.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농담하세요?"라고 답한 작가의 바람직한 결말이다.
누군가 내게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물을 때 "브람스를 좋아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을 비롯한 모든 감정에 확신한다는 것은 어찌나 비극적인 착각인가. 마음의 소리를 따르다 보면 사랑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알게 된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변화하는 사랑이 어찌나 가증스러운지 알게 된다. 모르겠다. 덧없고 변하기 쉬우며 불안정하고 미묘한 이 감정을 나는,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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