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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ul 01. 2024

못생긴 마음 사랑하기 『나주에 대하여』

[소설] 『나주에 대하여』 - 김화진 (문학동네,2022)

못생김을 사랑하기란 참 어렵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누군가 덧칠해 놓은 마음의 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말, 타인에 대한 증오, 혹은 스스로에 대한 책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추악한 형태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생긴 마음들을 쓸 때 나는 이상하게 행복하다”고 말한 김화진 작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말처럼 못생긴 것을 대할 땐 이상하리만큼 솔직해진다. 사랑하진 못해도, 솔직할 수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못생긴 마음과 사람을 엮어낸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는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인 김화진은 단편소설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주에 대하여」를 통해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책에 담긴 모든 소설이 마음을 울렸지만, 특히 「꿈과 요리」와 「나주에 대하여」가 인상적이었다. 아마 나의 못생긴 마음이 그들에 겹쳐 보였나 보다.





단편 「꿈과 요리」에선 영화 평론가를 꿈꾸는 두 인물 ‘수언’과 ‘솔지’가 등장한다. 둘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대학 동문이자 오래된 친구지만 타고난 기질과 꿈을 대하는 태도, 인생의 방향 등 모든 것이 정반대인 인물이다. ‘수언’은 조용한 성격에 자신의 꿈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지만, 묵묵하게 꿈을 키워나가며 텅 빈 마음과 원인 모를 초조함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사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솔지’는 모든 이들에게 주목받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러나 고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정작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인물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때문인지 둘은 서로를 향한 끌림을 거부하지 못한다.


‘수언’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친구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서로를 쓰다듬을 줄 아는 ‘솔지’가 부럽다. ‘솔지’는 아무리 현실적인 문제에 치여도 영화 평론가의 꿈을 놓치지 않은 ‘수언’이 부럽다. 너는 나보다 더 행복하겠지.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을 갖고 있는 넌 어떤 기분일까. 둘은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부러워하며, 존재하지 않는 상대방의 삶을 머릿속으로 그려낸다.


생각하기도 한 게 아니라 오래 생각하다 보면 늘 그쪽으로 생각이 매듭지어졌다. 그래도 쟤가 나보다 낫다, 그래도 쟨 뭘 하잖아, 그런 식으로. P.85




나는 너무나도 솔지같은 사람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가득 하지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데 하루를 다 허비하는 사람. 작가가 될 거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떵떵거리지만, 정작 보여줄 만한 글은 하나도 없는 사람.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결국 ‘현실적’이라는 핑계를 대며 옆구리에 토익책을 끼고 도서관에 가는 내 모습은 솔지와 퍽 닮았다. 그래서 내겐 ‘수언’이 대단하고, 멋있고, 닮고 싶고, 너무도 부러웠다. 분명하게 못생긴 내 마음들이다.


그러나 나는 부러움의 제로섬게임을 믿는다.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만큼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한다.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은 다른 형태의 재능으로 나를 성장시킨다. 평생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평생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그 사람이 되기 위해 살 필요도 없다. 소설의 끝에서 서로를 질투하고, 한심하게 바라보며 대판 싸운 솔지와 수언이 다시 화해할 수 있었던 이유다.


수언이 없는 몇 주간 솔지는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수언은 그렇게 살 수 있는 애라서 그 애가 좋고 멋졌던 건데. 그 질투심을 드러냈던 건 나였지. 물론 수도 한심함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럼 비긴 거 아닌가. 비겼을 땐 뭘 어째야 하는가. 그렇게 고민하다가 솔지는 수언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이제 그만 저녁 먹으러 오라고. P.109




또 다른 단편 「나주에 대하여」에선 질투와는 사뭇 다른 못생긴 감정이 등장한다. 애인의 전 여자친구인 ‘나주’는 주인공의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미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의 SNS로 그녀를 쭉 염탐해 왔기 때문. 누군가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행위는 불쾌하게 느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실 애인의 전 상대가 궁금한 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쓸데없는 자극과 후회가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인 걸 알면서도 열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다.


 너를 좋아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너를 좋아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위선인지 위악인지 가릴 수 없었다. P.51


그러나 자신의 애인이 사고로 인해 죽어버렸기 때문일까. 주인공이 나주의 SNS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일반적인 질투와 달랐다. 주인공의 애인 ‘규희’는 나주와 너무나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같은 종교와 조용한 성격.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며, 애인끼리 몸을 섞는 행위는 불결하다고 생각했던 규희의 모습은 나주와 너무도 닮아있다. 왜 규희는 자신과 똑 닮은 나희가 아닌 나를 택했을까. 내가 넘지 못하는 선 너머에서 그들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주인공은 나주의 일상을 훔쳐보며 그녀를 알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있었던 규희의 모습과 내가 알고 있던 규희의 다른 점까지도.


우린 달라. 규희는 나와의 관계가 익숙해질 무렵 입버릇처럼 말했어. 다르지만 좋아. 내 얼굴에 언짢아하는 기색이 엿보이면 나를 달래듯이 그렇게 덧붙였지. 그런데 있잖아. 다른 걸 좋아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일까. 언제까지일까. P.71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란 녀석이 못생겨 보이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다르다. 생긴 것과 성격, 취미와 성적 취향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나와 같지 않으니 못생겨 보인다. 나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으니, 빛과 그림자의 형태 또한 달라 보인다.


결국, 못생긴 마음을 사랑하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새 이야기」에서 사람으로 변한 ‘새’의 마음을 ‘파’의 목소리를 통해 이해한 것처럼, 「근육의 모양」에서 필라테스를 통한 근육의 대화로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한 것처럼, 「쉬운 마음」에서 자신을 고백하고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는 것처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의 내면은 못생겼을지라도, 이를 이해하려는 마음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 못생긴 마음을 사랑한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선배, 저는요 ••• 사실 사람들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게 좋아요. 이런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 촌스럽고 의존적이고 속이 빈 것 같다는 걸 알면서도.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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