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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ul 08. 2024

악인의 악인 죽이기『시계태엽 오렌지』

[소설]『시계태엽 오렌지』 - 앤서니 버제스 (민음사,2005)

성선설이 옳은지, 성악설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선과 악의 본성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모든 인간은 선인이자 악인이다.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규정할지라도, 타인에게 나쁜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당신은 악인이 된다.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쉽게 뒤집힐 수 있는 것. 선과 악의 모호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악한, 선악의 절대성을 초월한 악인이 존재하진 않을까? 그런 악인이라면 차라리 이 사회에서 없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20세기 최고의 영어 소설 100선 중 하나로 꼽히고, 『1984』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디스토피아 책으로 불리는 앤서니 버지스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에는 그런 악인이 실재한다.


[소설]『0시계태엽 오렌지』 - 앤서니 버제스(민음사,2005)




소설은 15살의 소년 ‘알렉스’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비행을 저지르는 장면을 시작으로 그가 악인임을 명백하게 알려준다. 마약을 탄 우유를 마시며 무고한 시민을 괴롭히고, 절도와 폭행을 일삼았던 알렉스와 그의 패거리는 스스로의 행동에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폭력으로 자신의 동료를 짓누르고, 급기야 무고한 사람을 살인하기까지 한 알렉스는 결국 교도소에 수감되고 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알렉스는 사회의 바람과 달리 교화되지 못한다. 교도소 내에서도 살인을 저지른 알렉스는 결국 사회의 '절대악'이 되어버렸고, 정부는 그에게 내재 되어있는 악을 인공적으로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루도비코 기법’으로 불리는 실험적 행동 수정 치료는 알렉스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알렉스는 의문의 약물을 투여받고 어두운 영화관에 꽁꽁 묶인 채 폭력적인 영상을 강제로 시청한다. 약 한 달간 반복적으로 진행된 이 실험의 결과 알렉스는 아주 가벼운 폭력 행위를 보거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메스꺼움과 함께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착한 사람으로 ‘교정’된 알렉스는 이제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으니 그걸로 문제는 해결된걸까? 인체실험 덕에 남은 수감 기간을 감형받은 알렉스는 악에 대한 혐오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악’으로 가득했다. 과거 알렉스가 폭행했던 늙은 학자는 출소한 그를 알아보고 동료와 함께 그를 짓밟는다. 그는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함께 일탈을 즐겼던 동료가 제복을 입고 그를 맞이했다. 그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던 옛 동료는 그를 잔인하게 구타하지만, 알렉스는 그들에게 맞설 수 없었다. 악의 본성을 잃어버린 절대적인 선인(善人)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너를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었어. 네겐 선택할 권리가 더 이상 없는 거지. 넌 사회에서 용납되는 행동만 하게 되었어. 착한 일만 할 수 있는 작은 기계지. P.183





사회적인 시각에서 알렉스는 완벽한 악인에 해당한다. 무고한 시민을 폭행하고, 불법적인 행위에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그는 사이코패스와 다름없다. 도저히 교화가 불가능해보이는 그의 악한 본성을 제거하는 수술은 바람직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 정부가 악을 규제하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을 규제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선과 악을 내재하고 있다. 많은 평론가가 '루도비코 기법'을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행위’로 해석한 것처럼 인간에게서 악한 마음은 결코 지워낼 수 없다.


선함이란 내면에 서 우러나오는 것이란다. 6655321번아. 선함이란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어떤 것이야. 선택할 수 없을 때는 진정한 인간이 될 수가 없는 거야." P.100


이 책의 교훈은 인과응보, 혹은 권선징악이 되어선 안된다. 소설 속 그 어디에도 선(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렉스 패거리들의 아지트였던 코로바 밀크 바에선 암묵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마약을 팔고, 가난한 노인들은 푼돈에 비행 청소년들의 범죄를 눈감아주고, 교도소에서 역시 폭행이 만연했으며, 정부는 알렉스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인체실험을 자행하고, 알렉스에게 당한 피해자들 역시 복수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한다. 오직 악인만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완전무결한 선인은 없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악에 대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고 말했지만, 사회적으로 약속된 선과 악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법이라는 형태의 규제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필연적이며, 그에 대한 처벌 역시 사회적 합의의 이유로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의 논지는 소설 속에서 정부로 불리는 국가, 혹은 사회가 규정한 선과 악을 개인이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억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눈에는 눈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했지. 누가 너를 때리면 너도 반격을 하겠지,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너 같은 야만적인 깡패 놈들에게 정말 심하게 타격을 받은 국가는 왜 반격을 할 수 없다는 게야? 그러나 이 새로운 견해에 따른다면 안 된다는군. 새로운 견해에 따르면 악당을 착한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는 거지. 이 모든 이야기가 나한테는 정말 부당하게 들려. 그렇지?? P.112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알렉스와 인간의 정신을 개조하는 정부 중 어떤 쪽을 더 악하게 볼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악인에 해당한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작가의 ‘악인의 악인 죽이기’는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함이었을까. 모두가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악한 마음을 포함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져준 고전, 『시계태엽 오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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