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음』 - 나쓰메 소세키(현암사,2016)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마음’이라는 단어에는 총 7개의 뜻이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의 주관적 의미부터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의 감정’의 감정적인 의미,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의 본질적인 의미까지 그 쓰임이 다양하다. 그러나 보조사인 ‘-대로’가 붙은 부사 ‘마음대로’에는 ‘하고 싶은 대로’라는 단 한 가지의 의미만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쓴 글에 마음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자주 등장시켰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 내 마음대로 표현했던 것 같다. 마음이 아닌 것들도 모조리 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는 종종 마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고, 마음의 크기에 따라 의지와 결과가 정해진다고.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정신 역시 마찬가지다. 삶은 자신의 주관에 달려 있고 해석하기 나름이므로 자신의 마음에 따라 외부 세계가 형성된다. 무엇을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는 나 같은 부류에겐 참 좋은 조언이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은 마음을 다짐하는 행위가 과연 마음대로 이뤄질 수 있느냐이다. 과연 우리는 마음이라는 근원을 능동적으로 형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마음을 주체적으로 조종할 수 있을까?
일본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마음>에서 작품 속 ‘나’와 ‘선생님’의 대화를 통해 ‘마음에 대한 착각’과 ‘마음대로의 한계’를 깨달았다. 책은 총 세 파트로, 세상을 무료하다고만 여기는 대학생 ‘나’가 염세적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선생님’을 만나는 1부(선생님과 나), 당위성으로 엮인 부모와의 관계에서 ‘나’가 세상에 염세를 느끼게 되는 2부, (부모님과 나), 그리고 선생님이 이 세상을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된 과거가 밝혀지는 3부(선생님과 유서)로 나뉜다. 시대와 국가가 달라 읽기 어려운 고전이지만 ‘마음은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 작품을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화자는 ‘나’이지만 주인공은 ‘나’가 바라보는 ‘선생님’이다. 우연한 계기로 바닷가에서 ‘선생님’을 만난 ‘나’는 어쩐지 세상과 섞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선생님’을 따르게 된다. ‘나’는 ‘선생님’의 염세적인 태도에서 다른 사람에게선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끌림을 느끼고,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전념한다. 그러나 ‘선생님’의 내면에 존재하는 마음은 상당히 뒤틀려 있었고,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함에도 그 안으로 파고들려 한다. 이후, ‘선생님’이 남긴 유서를 통해 ‘나’는 그의 마음이 빈 이유를 헤아리게 된다.
이 책에는 크게 세 가지의 마음이 혼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마음은 ‘나’가 ‘선생님’에게 끌리는 마음이다. 이는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을 의미한다. ‘나’는 낯선 장소에서 발견한 ‘선생님’에게 어떠한 끌림을 느끼는데,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첫 만남부터 누군가에게 이끌리는 보편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만으로는 끈끈한 인연이 형성되지 않는다. 마음이 더 커지기 위해선 ‘양가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선생님’을 좋아하는 동시에 미워한다. 그를 존경하는 동시에 하찮게 여기고, 신경 쓰고 싶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생각한다. 이렇듯 섞이지 않을 것만 같은 반대 성질의 마음이 동시에 발현되는 것을 ‘양가적인 마음’이라고 하는데, 경외감과 애증 같은 감정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2부에 등장한 ‘나’와 ‘부모’의 관계에서 잘 나타나는데, ‘나’는 심각한 병으로 아버지가 얼마 살지 못해 슬퍼하면서도, 아버지의 장례를 서둘러 마무리한 뒤 도쿄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마음은 대상과의 관계가 깊을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자식은 부모의 부정적인 모습을 기억하고, 그와 반대되는 이상형을 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또 거듭 가벼운 실망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을 멀리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불안감에 흔들릴 때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면 내가 기대하는 것이 언젠가 눈앞에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다. p.24
두 번째 마음은 선생님과 ‘K’가 아가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의 감정’이다. 3부에 등장한 ‘선생님’의 친구 ‘K’는 하숙집의 ‘아가씨’와 삼각구도의 대립을 이룬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아가씨’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그 마음을 감췄고, ‘K’의 마음에 혼란을 주었다. 이로 인해 더 이상 ‘선생님’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거짓된 마음을 해소하지 않으면 새로운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또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은 죽기 직전까지 죄책감과 함께 이 세상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 스스로 마음을 채울 수 없었던 ‘선생님’은 가장 가까운 그의 아내와 ‘나’에게 조차 마음을 열지 못했으며, 항상 자신을 ‘외로운 사람’이라고 칭한다. 거짓된 마음은 그가 이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게 된 이유가 된다.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네. 말하자면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남들도 믿을 수 없게 된 거지. 자신을 저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거네’ p49
세 번째 마음인 ‘선생님이 느끼는 죄책감의 마음’ 역시 이와 이어진다. 3부의 제목 ‘선생님과 유서’에서도 알 수 있듯 선생님은 나에게 장문의 편지로 죽음을 예고한다. 과거의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던 ‘선생님’은 죽음 직전에야 해소되지 않은 마음을 마주한다.
거짓된 마음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당사자를 갉아 먹는다. 배출하지 못한 진심은 후회라는 마음으로 전이된다. 후회는 다른 마음보다 몇 배는 무거워 마음의 방 하단에 겹겹이 쌓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굳어진 후회는 성격과 가치관 등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의 본질적 마음과 견줄 만큼.
(...) 내가 어떤 방면으로 나아가려고 생각하자마자 어딘가에서 엄청난 힘이 나와서 내 마음을 꽉 쥐고 전혀 움직일 수 없게 하네. 그리고 그 힘이 나에게 너는 뭔가를 할 자격이 없는 놈이라며 억누르듯이 말하지. (...) 나는 이를 악물고 왜 남을 방해하는 거냐고 호통을 친다네. 불가사의한 힘은 차가운 목소리로 웃지. 네가 잘 알 텐데, 하는 거야. 나는 다시 축 늘어지고 마네. p.270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자신의 마음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책을 읽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마음의 수준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마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이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본 ‘끌리는 마음’, ‘거짓된 마음’, ‘해소되지 않은 마음’은 책을 읽고, 작품 밖에 존재하는 내가 분석한 마음이다. 제삼자는 당사자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불현듯 어떠한 마음이 들 때, 그 근원과 자신의 반응을 인지해야 한다. 이 마음은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거짓된 마음은 아닌지. 해소할 수 있는 마음인지. 그리고 그 마음이 나의 진실한 마음이라고 생각되면, 그 마음을 따르면 된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