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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ug 21. 2023

1인 출판사를 왜 해요?

[사회]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니시야마 마사코


책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에게 출판이라는 단어는 신비롭다. 출판 앞에 ‘상업적’이라는 형용사가 붙어도 왠지 돈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대중에게 널리 알린다'라는 publication의 뜻 역시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편집하는 사람, 글을 판매하는 사람 모두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책을 대하는 사람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일까, 책과 함께 삶을 꾸리는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특별한 사람들이다.


출판 시장은 날마다 곡소리를 내고 있지만, 특별한 사람들은 이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혹자는 조만간 모든 책이 영상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출간작가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나는 추세다. 출판사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네임밸류가 있는 대형 출판사에 글을 투고하거나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만이 작가가 되는 길이었지만, 최근에는 스스로 출판사를 만들어 자신의 책을 내거나, 접근성이 낮은 독립출판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오늘 알아볼 책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을 편집한 ‘유유 출판사’ 역시 1인 출판사로 시작한 소형 출판사다. 이처럼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1인 출판사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1인 출판사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일본의 대표적인 1인 출판사들을 인터뷰한 이 책에서 그 답을 알아볼 수 있었다.




혼자서 다 해야 하는 1인 출판사?

 

시대와 주변의 변화에 눈길을 주면서도 쉽게 추종은 하지 않는다. 1인 출판사에는 중요한 균형 감각일지도 모른다. p.61


사실 1인과 출판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출판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영역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과 글의 형태를 다듬는 일, 표지와 종이재질을 통해 글의 옷을 입히는 일과 만질 수 있는 책의 형태로 글을 만드는 일. 마지막으로, 적절한 서점에 책을 파는 일과 독자들이 책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홍보하는 일 등 모든 과정이 전문가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과정을 혼자 진행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출판 영역의 장벽이 꽤나 높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과 인쇄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혼자서도 모든 출판 과정을 직접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글을 쓰고 있는 작가를 비대면으로 컨택하고, 표지 디자인 역시 프리랜서 디자이너에게 맡긴다. 맞춤법 역시 뛰어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클릭 한 번이면 대부분의 오타를 수정할 수 있고, 책을 제본하는 일 역시 소량인쇄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에 맡기면 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문적인 영역의 허들이 낮아진 것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 따르면 ‘1인 출판사’는 그야말로 홀로서기이지만, 다른 분야의 ‘소자본 사업’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하면 할수록 홀로 버틸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p.10) 이전과 달리 소수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1인 출판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지, '1인 출판사'라고 해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는 게 아니다. 즉, 1인 출판사는 1인 전문가의 집합체인 셈이다.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출판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통해 나아간다. 책을 통해 사람들이 연결된 것이다.




1인 출판사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제 이상 같은 걸 좇으면 안 됩니다. 먹고사느냐 마느냐의 문제예요. 그 안에서 뭔가 좋은 게 나오지 않을까요? 시대와 함께하는 일을 무시하고 이상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p.121

   

책을 만드는 일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직업으로 삼았다면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회사고,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출판은 그 어려움이 배가 된다. 출판 업계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1인 출판사가 만든 책은 대형 출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이 적고, 인지도도 떨어지며,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독립출판물은 대부분 다수의 니즈를 따라가기보단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때문에, 몇 백 권씩 쌓인 재고와 형편없는 수익률은 1인 출판사가 마주해야 할 잔혹한 현실이다.


그래서 대부부의 1인 출판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생존 전략을 갖고 있다. 기존 출판사의 성공사례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이전 방식에선 경험할 수 없는 차별점을 둔 것이다. 일본의 1인 출판사 "사토야마샤"의 첫 작품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피해를 입은 지역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하마유리 시절에>인데, 이 책에는 무려 453점의 초상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기존 출판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시도다. 또한, 책 한 권을 만들 때 아예 1,000부 한정으로 인쇄하겠다는 뜻을 담은 "미르북스" 역시 독특한 생존전략을 구사했다. 자신들의 책을 많이 파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1,000명의 독자들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1인 출판사들은 기존 출판사처럼 "어떻게 하면 잘 팔릴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답게 팔 수 있을까"를 염두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1인 출판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효율적으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은 피폐해지죠. 젊은 편집자도 처음부터 “잘 팔릴 책을 만들어”라는 말을 숱하게 듣다가 가장 중요한 감성이 충분히 자라기 전에 ‘판다’라는 가치만을 위해서 일하는 로봇이 됩니다. 그런 악순환을 20년 정도 되풀이해 오다 지금 이렇게 된 거죠. p.142


현대인들은 책을 많이 찾지 않는다. 출판 작업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다. 수익성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1인 출판사를 차리는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1인 출판사를 설립한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를 다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출판사를 설립한 경우가 많다. 일반 회사는 온전히 이윤만을 추구하는 곳이다. 따라서 말 잘 듣는 로봇이 되기만 한다면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회사를 뛰쳐나온 사람들은 로봇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 출판사의 경우 최신 유행이나 트렌드, 저명한 작가 등에 초점을 맞춰 책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빠르게 '파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1인 출판사의 경우 책을 단순히 '파는 것'에 모든 가치를 두지 않는다. 1인 출판사는 출판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맞다고 생각하면 독자에게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아도 책을 만들어 낸다. 기존의 질서보다 더 자유로운 이야기, 그리고 숨겨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발굴하는데에서 1인출판사들은 어떠한 가치를 발견한 게 아닐까. 출판업계의 낭만이 아직 실존하는 것 같아 기쁜 마음이다.




현재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1인 출판사에 관심이 많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을 출판사에 투고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고, '안 받아주면 그냥 내가 출판사를 차려버리지 뭐'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산 이유 역시 "1인 출판사"라는 단어에 눈이 홀려 구매한 것이다. 업계에 먼저 진출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출판은 어려웠고, 현실은 암울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신념을 만들어나가며, 출판의 가치를 깨달았다. 나 역시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겠다'라고 다짐한 과거를 기억하며 나만의 책, 나만의 가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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