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내가 다정하지 못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다정함이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에겐 방법론적인 접근이 아닌, 다정함이 묻어있는 어떤 이야기들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혼비 작가님의 『다정소감』은 훌륭한 대안이 되었다. 문장들을 정확히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그 책의 샛노란 커버만 봐도 마음 한 편이 확실히 따뜻해지는데, 주위를 세심히 살피는 시선과 말 한마디, 더 나아가 손 한 번 건넬 것 같은 따뜻한 다정함이 잔상처럼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정혜윤 작가님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서는 좀 더 호소 짙은 다정함을 배울 수 있었다. 참사 속에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런 이들의 가족들이 사건의 옆 변두리에서 겨우내 말을 이어가며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들의 소리가 영영 묻히지 않도록 작은 끄덕임으로 응답하며 연대하는 일이 다정함의 한 결이란 것을 말이다. 결국 두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통해 다정함에는 ‘타인'과 ‘연대'가 빠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한 사람에게서 다정함의 실체를 보았다. 마치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 대하듯 타인에게도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즉, 다정함에 차별이 없었다. 누군가 지하철 노선을 물어보면 꼭 게이트 앞까지 데려다주고, 1시간 동안 꽉 막힌 도로로 길을 잘못 든 택시 기사님에게 화 한 번 내지 않고, 반 값만 받겠다는 말을 극구 말려 제 값을 다 주고 내리는 사람이었다. 착한 심성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때 그 상황 속 내가 느꼈던 그 사람의 언어와 표정, 손짓들을 보면 그건 분명 다정함이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걱정하는, 농도 짙은 따뜻함이 확실했다.
요즘은 이 다정함의 힘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 버린 그 사람이든, 무심코 지나쳤던 타인이든 주체와 형태 상관없이 다정함은 무서우리 만큼 강력해서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감정이 사그라든다 해도 저 깊은 구석 다정함이란 불씨는 작게나마 영원히 살아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불씨 덕분에 살아갈 이유를 찾기도, 서늘한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며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전히 서툰 애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