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혜 Jun 12. 2022

초여름의 산책


산책 (2022.05)




“주로 언제 산책을 하시나요?”


내 산책 습관을 생각해 보면, 이 질문에는 ‘언제’보다 ‘왜’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유로 여기까지 나와 걷고 계신가요?”와 같은 질문에 더 답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사전에서는 산책을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다’라는 문장으로 정의한다. 즉, 목적이 분명한 셈이다. 그게 휴식이든 건강이든 천천히 걸음으로써 무엇인가를 얻기 위함이 있다. 나에게도 산책은 그렇다. 취미를 산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나도 좋아서라기보다는 주로 필요에 의해 걷는다. 요즘은 딱 두 가지의 이유로 산책을 자주 하는데 하나는 사진, 다른 하나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전자는 나의 취미를 위해, 후자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사진을 시작한 지는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어떤 연유로 중고 카메라를 40만 원이나 주고 덥석 샀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작은 컴팩트 카메라 하나를 들고 사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렌즈 교환식 카메라로 기기를 업그레이드할 정도로 사진에 푹 빠져 있다. 주요 피사체는 조금만 나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이다. 숲이나 강에서 나무나 윤슬을 찾고 빛의 동태를 살피며 찍고 쉬고 걷고, 찍고 쉬고 걷고를 반복한다. 시간이 그렇게 훌쩍 갈 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는 시간에는 또 다른 산책길이 열리곤 한다.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생명체를 사진을 확대해 가면서 발견하고, 노출값을 낮추어 빛에 가려져 있던 구름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순간을 포착하고, 포착한 순간을 더 세심하게 기억하는 작업이 산책 덕분에 이루어진다.


나를 위한 산책은 약간의 슬픔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엄마와 싸웠을 때, 오늘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와 다시는 못 보는 사이가 되었을 때. 이렇게 적고 보니 슬픔이라기보다는 좋지 않은 감정의 총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면 일부러 그 마음을 외면하려 온갖 딴짓을 동원해 집중력을 떨어트리지만,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은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부정적인 내 감정을 똑바로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방법으로 산책을 선택한다. 터벅터벅 걸으며 나를 마구 파헤쳐 보는 것이다. 왜 이런 감정이 들었는지, 내가 생각했던 이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인지. 걷다 보면 이성 세포가 더 강화되는 듯 하나하나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한참을 걷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휴식을 취할 여유도 생겨난다. 취미를 위해서든, 나 자신을 위해서든 목적을 두고 걷는 이 행위가 내 삶에 많은 생동감을 주는 것만큼은 확신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