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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Nov 25. 2023

서울대 관악수목원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11월의 산책코스

2년 전에 여름과  그해 가을에 안양계곡의 안양예술공원을 걸으면서 계곡 위쪽으로 ‘관악수목원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본 적이 있어서 그 길이 궁금했었는데 최근 뉴스에서 보니 그 수목원이 한시적으로 개방한다고 한다. 그것도 올해는 11월 15일까지.


찾아보니 관악수목원은 서울대 농대에서 관리하는  수목원으로 평소에는 특별 프로그램이 있을 때만 개방하고 봄과 가을에 며칠 동안만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곳으로 이번 가을에 기회를 놓치면 내년 봄 4월까지 기다려야 할 테니 이 기회에 가보기로 한다.

오후에 비예보가 있기는 하지만 오전 날씨는 좋은 편이다. 1호선 관악역에 모인 친구들은 모두 아홉 명이다. 라니씨는 지하철 노조의 파업으로 열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몇 분 늦게 도착한다.

관악역에서 출발하여 아파트  뒷길로 해서 안양역 쪽으로 가다가 삼막천이라는 개천과  삼막 3교 다리를 만나는데 이  다리 아래 개천길로 내려간다. 개천길을 따라 계속 가면 정조의 화성 능행 때 세워져 일행이 건너갔다는 만안교를 만난다. 만안교를 지나 좀 더 걸으면 삼성천과의 합류지점이 나오고 ‘안양예술공원'이라고 표지판도 서있다.

이제 삼성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안양 계곡과 안양예술공원이다. 시원하게 내려오는 계곡물이 맑고 물 위에서는 흰색 오리들과  청둥오리가 평화롭게 떠 다닌다. 계곡은 올라갈수록 넓어진다. 계곡 중간의 물 웅덩이를 보며 어렸을 적 이곳이 안양유원지라고 불렸던 때 여름방학에 여기 와서 포도도 먹고 자연 풀장에서 물놀이도 했다는 이야기도 하며 또 2년 전 가을에는 안양사의 단풍이 예뻤다는 것도 기억한다. 그때 김중업건축박물관 테라스에서 먹은 점심이 맛있었다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는 관악수목원이므로 안양사와 박물관은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관악역에서 출발하여 한 시간쯤 걸으니 드디어 수목원 입구에 도착한다. 수목원 안에 들어가면 음식물 섭취가 불가능하니 간식과 음료수라도 마시려면  들어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입구 앞에 빈터가 보이는데 앉을 만한 바위도 드문드문 서 있어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마침 화장실도 가까이 있다.

수목원  입구에 들어서니 키 큰 소나무길이 우리를 맞는다. 우리는 인터넷방송에서 추천하는 대로 단풍나무길을 찾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에서 비켜나 왼쪽으로 올라가며 계곡을 끼고 가는 호젓한 산길이다.

단풍잎들은 며칠 전 비바람에 많이 떨어져서 기대하던 단풍은 볼 수 없으나  그 대신 길을 수북이 덮고 있는 낙엽들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잣나무 숲을 지나니 산길은 정문에서 들어오는 큰길과 만난다. 후문 방향으로  계속 길이 이어지지만 우리는 이쯤에서 되돌아가기로 한다. 정문으로 가는 큰길에는 아주 오래된 굵은 벚나무들이 많아서 봄에 꽃 필 때도 다시 오면 좋을 것 같다. 아까 지나쳐 간 큰 길가의 소나무 숲에는 벤치도 있고 노랗게 깔린  솔잎 낙엽이 눈길을 끌어 잠깐 앉았다 가기로 한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이 키 큰 소나무는 리기다소나무의 개량종 리기테다 소나무라고 하고 이곳이 그 시험장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관리인은  우리를 위해 사진도 찍어준다.


짧은 시간에 둘러본 수목원을 떠나기 아쉽지만 내년 봄을 기약하며 다시 예술공원 쪽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다가 주차장 가까이에 가격이 괜찮아 보이는 한식당으로 들어간다. 식당은 널찍하고 전망도  좋다. 오늘의 메뉴는 고등어정식, 반찬을 마음대로 더 갖다 먹을 수 있어 모두 만족한다.


돌아가는 길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카페는 생략하고 예술공원길로 들어서는데 올 때와 다른 쪽 건너편 개울옆에 숨어있는 숲길이 보여 그 길로  들어선다. 숲길에는 반쯤 누울 수 있는 멋진 벤치도 있다. 모두들 벤치에 누워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가을풍경을 실컷 즐긴다.

다시 안양계곡의 삼성천을 따라 내려가는데 가다 보니 어느새 안양대교가 나온다. 앗차! 여기까지 오면 안 되는데 너무 멀리 내려왔나 보다. 중간에 갈림길에서 삼막천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합류지점을 놓쳤다. 도로 후진하여 걸으니 그제야 만안교가 나오고 곧 관악역으로 향하는 큰길이 보인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이 길어지는 바람에 아주 오래간만에 나온 친구가 힘들었나 보다. 6.25 때 피란 가던 길이 생각이 난다나. 그때 그 어머니는 더 어린 동생을 업고 다섯 살인 자기는 타박타박 걸어가는데 가도 가도 길이 안 끝났단다. 모처럼 나온 친구인데 하필 오늘 많이 걷게 돼서 미안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이 이만 보 가까이 걸었으니까. 집에 돌아가서 잘 쉬고 피로를 빨리 풀기를 바라며 관악역에서 모두 헤어진다.

오후에 온다는 비는 다행히 산책길에서는 맞지 않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맞고 들어온다.  


 2023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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