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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Nov 10. 2023

한탄강주상리길과 고석정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11월의 산책코스

오늘은 11월의 첫째 목요일이고  목은산모임 탄생 열 돌이 되는 생일날이다.


10주년 기념일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조금 멀리 가서 자주 걷지 못할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길이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길이다.


한탄강 계곡이라면 여고시절에 학교에서 소풍 갔던 적이 있는 곳인데 경치가 무척 좋았었다고 기억이 된다. 넓은 협곡과 바위와 강물이 인상적이어서 오늘날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었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59년 만에 그때 그 친구들과 오늘 함께 가게 되었다.


이 반세기가 넘는 시기에 철원 한탄강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면서 온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계곡 중간 주상절리 절벽옆으로 잔도길이 개통되면서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에는 절벽 중간에 매달린 잔도길과 강 물 위에 부교를 띠워 만든 물윗길이 있는데 물윗길은 10 월에 개장하여 겨울철에만 운영한다고 한다.


오늘 10주년 기념산행이라고 출발장소인 압구정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는 서른세 명이나 되는 친구들이 모였다. 해외에서 온 친구도 셋이나 되었다.

특별히 오늘을 위해 대절한 버스에 올라타니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느라고 떠들썩하고 오늘의 산행에 대해서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잔도길은 우리가 처음 걸어보는 길이고, 3.6 킬로미터로 비교적 평평한 길이어서 한 시간 반이면 완주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진에서 보면 이 길이 수직 절벽에 높이 붙어 이어져서 아주 아슬아슬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아슬아슬한 길을 두려워하는 친구들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뉘어 걷기로  한다. 주상절리길 잔도길을 완주하겠다는 팀과 물윗길로 해서 일부만 걷겠다는 팀으로. 어느 팀에 들어가 걸을지는 버스 안에서 마음을 정하기로 한다.


압구정역에서 출발한 지 채 두 시간도 안 걸려서 철원의 드르니 매표소에 도착한다. 주상절리길의 출입구는 두 곳이 있는데 남쪽 출입구 드르니에서 출발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해서 '완주팀'은 여기서  출발한다. 여기서부터 완주하겠다는 친구들이 열아홉 명이나 된다! 예상보다 용감한 친구들이  많다! 한탄강에 와서 주상절리길을  걷지 않는다면 한탄강에 온 의미가 없다면서 다수가 완주팀 줄에 선다.

일단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모두 화장실에도 가고 단체사진도 찍는다.  '물윗길팀'은 버스를 타고 계속 가서  북쪽 출입구인 순담 매표소로 향한다. 순담매표소에서 주상절리길의 물윗길에 관해 물어보았으나 10월부터 개통한 곳은 은하수교에서 출발하는 일부 구간뿐이고 오늘 순담에서는 출발할 수 없다고 한다. TV 나 인터넷방송에서는 물윗길이 10월부터 이미 전부 개통된 듯이 영상도 자주 떴는데..? 이래서 인터넷정보는 전부 믿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고 어쩔 수 없이 순담계곡에서 출발하는 잔도길의 일부라도 걸어보자고 입구로 들어선다. 입장료는 만원이지만 경로할인받고 또 철원지역 상품권도 받고 해서 삼천 원에 입장하는 셈이니 가격은 꽤 괜찮은 편이다.

순담매표소를 지나 출입구를  통과하여 드르니 방향으로 500 미터쯤 걸어가니 첫 번째 전망 쉼터가 나온다. 여기서만 보아도 순담계곡의 경치가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도저히 잔도길은 못 걷겠다는 세 사람만 이 쉼터에 남기로 하고 다른 열한 명은 잔도길을 조금이라도 걸어 보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로 하고 잔도길을 조심조심 걸어간다. 이 친구들은 1Km 정도 걸어갔다가 되돌아왔는데 잔도길을 왕복 2Km는 걸은셈이다. 이들은 철망길뿐만 아니라 유리로 된 스카이전망대에도 가보고 출렁다리도 건넜다면서 하나도 무섭지 않고 재미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첫 번째 쉼터에 남아서 친구들을 기다리는 세 사람도 나름대로 시간을 잘 보낸다. 이쪽저쪽으로 계곡의 풍경 사진도 찍고 친구들 사진도 찍고  전망대에서 열심히 해설하는 해설사의 설명도 듣고 또 잔도길에서 먼저 돌아오는 친구들과 잡담도 즐기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덧 한 시간 반이 지나서 드르니에서 출발한 '완주파' 친구들도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개선장군처럼 얼굴에는 승리의 기쁨과 성취감으로 만족한 미소를 가득 담고 걸어온다.


이제 순담매표소를 떠나 버스를 다시 타고 예약해 놓은 고석정의 식당 '향토가든'으로 간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오대쌀 솥밥을 전문으로 하는 한정식 집인데 내부가 깔끔하다. 각종 나물과 푸짐한 반찬으로 잔칫상 같은 밥상 앞에서 많이 걷고 허기진 친구들이 모두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점심 후에는 고석정과 고석바위를 보려고 강가로 내려간다. 신라의 진평왕이 세웠다는 정자 고석정에서 내려다보는 한탄강 풍경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물가에 우뚝 솟은 고석바위와 한탄강의 푸른 강물과 모래밭 그리고 맞은 편 절벽과 맑은 하늘이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물가로 내려가는 길은 좀 가파르고  바위에 마른 모래도 깔려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강변의 모래밭에 내려가니 위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더 말해서 무엇하리오. 모두들 여고생들처럼 삼삼오오 모여서 호호거리며 이리저리 사진 찍느라고 바쁘다. 이곳에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지만 다음 일정이 있으니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 장소로 떠난다.


다음에 갈 장소는 원래 고석정 꽃밭이었다. 그러나 이틀 전에 유감스럽게도 꽃축제가 끝났다고 아예 입장조차 할 수 없어 남아있는 꽃이라도 좀 볼 수 있을까 하던 기대는 무너져 버린다. 오는 길에 버스의 차창밖 길옆으로 가우라 꽃이 가득 핀 꽃밭이 보였었는데. 대신에 관광센터에서 추천하는 어울림 카페에 조금 일찍 들어가서 차를 마시기로 한다. 카페 이름답게 여러 사람이 어울리기 좋은 장소여서 우리는 여기서 목은산회 10주년 기념 촛불잔치를 한다. 커다란 생일 케이크는 들고 다니기 번거로우니 생략하고 그 대신 한 친구의 딸이 엄마들 간식하시라고 보내준 큼직한 단팥빵을 모두 나눠 갖고도 남은 빵을 여러 개 쌓아 올려서 그 위에 총무가 준비해 온 열개의 초를 꽂아 촛불을 붙인다. 즉흥적이지만 기막힌 아이디어가 아닌가?! 게다가 이 카페에는 자그마한 공연 무대도 있는데 친절한 카페 여주인은 목은산회 열 돌 생일이라니 축하한다면서 고맙게도 직접 축가까지 불러주어 흥을 돋워 준다.


절경을 감상하고 맛있는 음식에 촛불과 축하 음악, 손뼉 치고 장단 맞추며 즐거워하는 친구들, 이만하면 완벽한 생일잔치 아닌가?  이 보다 더 바란다면 죄가 될 것 같다.

이미 어두워진 저녁 차창 밖으로 서울의 야경까지 덤으로 감상하며 여섯 시 좀 지나서 압구정역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니 백화점 앞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벌써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히고 우리를 맞이해 준다. 우리 잔치의 대미를 장식해주는 듯하다.  

우리 친구들이 앞으로의 십 년도 건강하게 함께 잘 걸어주기를 빌며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귀갓길에 오른다.


후일담: 내가 버스에서 여고시절에 우리가 한탄강으로 소풍 간 적이 있으나 언제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고 기억하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더니 서른세 명 중 너 덧사람만 기억난다고 했고 간 적이 없다고도 했다. 집에 와서 옛날 앨범을 들춰보니 아주 작은 흑백 사진 한 장에서 고석정 앞에 앉아있는 여고생들(우리)을 발견했다.

이 사진을 수다방에 올렸더니 금방 어떤 친구가 답글을 올렸는데 그날이 바로 1964년 10월 16일(자기가 갖고 있는 사진 뒷면에 쓰여 있단다)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 하나는 그날의 일기장! 까지 찍어 보내주었다. (59년 전 일기장을 아직도 갖고  있다니!)

1964년이라면 우리가 고3 때였는데 그때 가을소풍을 갔었다고?  지금의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일 텐데 우리가 좋은 시절에 살았다고 생각해야 하나?

아니면 친구들도 그때 입시걱정 하느라고 한탄강의 절경은 안중에도 없었고 기억에도 없는 게 아닐까?


2023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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