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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Nov 04. 2023

양재(매헌) 시민의 숲 단풍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10월의 산책코스

양재시민의 숲은 관악산에서 흘러오는 양재천과 청계산에서 흘러오는 여의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공원으로 우리가 철마다 즐겨 찾는 곳이다.

봄이면 양재천과 여의천 둑길에서 만발한 벚꽃길을 걷고 여름에는 벚나무와 플라타너스  늘어선 길의 푸른 그늘을 즐기며 걷는다. 또 겨울에는 운이 좋아서 눈 오는 날씨를 만나면 눈 내리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눈 쌓인 겨울 풍경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을에 시민의 숲에서 단풍구경 한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풍도 봄꽃의 개화시기와 마찬가지로 때를 잘 맞추어야 절정기의 단풍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해를 생각하고 가보면 어떤 때는 너무 이르거나 어떤 때는 너무 늦을 때도 있다.


오늘은 어떨까? 기대하며 양재시민의 숲(매헌) 역 1번 출구로 간다.


시내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해서인지 친구들이 많이 모였다. 열여섯 명이다.


우선 여의천변을 따라 북쪽 시내 쪽을 향해 걷다가 공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를 지나쳐 계속 간다. 나중에 돌아올 때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부터인지 공원입구의 팻말에 적힌 "양재시민의 숲"이 "매헌시민의 숲"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 매헌 윤봉길의사의 기념관이 있어서 그랬나 보다.

어쨌든 우리는 양재시민의 숲으로 알고 왔지만 매헌시민의 숲을 걷게 되었다.


 여의천과 양재천의 합수 지점에서 다리를 건넌 다음 왼쪽으로 과천 방향으로 걷는다.

이 길로 선바위역까지 계속 가면 가는 길에서 맞은편으로 관악산이 보이고 왼편으로는 아직 고층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남쪽이 환히 트여 전망이 좋다. 의왕이나 봉담으로 가는 고가도로가 잠시 시야를 가리기는 하지만.  

벚나무와 키 큰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길게 이어진다. 길 오른편에는 우면동과 우리가 언젠가 걸었던 바우뫼 공원, 말죽거리 공원이 있다.

말죽거리는 양재역 사거리 부근의 옛 지명이어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성남이나 청계산에 가려면 말죽거리를 지나가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이름이 공원이름에만 남아있다. 그 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제목으로도 알려졌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주암교 아래에 도착하여 여기서 잠깐 쉬고 양재천을 다시 건너 반대편 길로 시민의 숲에 가려고 한다. 건너편에는 과천 화훼단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택지로 개발하는 공사 중이다.

지난봄에 여기서 과천 추사박물관을  찾아가려다가 철거 직전의 인적 없이 폐허처럼 된 화훼단지를 통과하며 스산한 광경을 보고 으스스했던 기억이 난다. 양재천을 걷다 보면 서초문화예술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또 하나 있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가고 곧장 매헌시민의 숲 안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숲이!!!

지금까지 걸어온 양재천변 가로수길의 나무들은 아직 단풍이 다 들지 않아 색깔이 단조로왔는데 시민의 숲 안에 들어서자마자 딴 세상이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우선 눈에 들어오고 노란색, 주황색, 갈색 등 그야말로 오색단풍이 푸른 나무들과 어울려  그림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화려하다. 바닥에는 미리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덮여 있어 운치를 더 해준다.

윤봉길의사 동상과 기념관 앞의 은행나무는 벌써 샛노랗게 금빛으로 빛난다. 날씨도 도와준다. 지난 며칠 동안 날씨가 춥더니 오늘은 약간 덥다고도 느낄 정도다.

전에 와본 적 없는 시민의 숲의 구석진 곳까지 오래간만에 돌아보며 서울의 가까운 곳에서 단풍구경을 실컷 하며 가을 풍경을 만끽했다.

오늘도 우리는  단풍숲에서 두 시간 이상 걷고 공원을 나와서는 점심을 하러  양재(매헌) 시민의 숲역  건너편에 있는 편백찜집을 찾아갔다.

커피는 한 친구가  자신이 이 동네 주민이니 우리를 대접하겠다고 초대했다.

우리는 매주 이 동네 저 동네로 다니며 이렇게 가는 곳마다 친구들의 대접을 받으니 혹시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2023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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