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현 Dec 23. 2023

청계산 수변공원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12월의 산책코스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고 가랑비까지 내린다. 요즘 우리나라 겨울날씨가 예전 소위 선진국의 겨울날씨라는 날씨를 따라가는 것 같다. 눈도  오지 않고 추적추적 비가 많이 내리고 어둡고 음산한 날씨가  자주 계속된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리니 걷는 장소를 변경해 볼까 하다가 아직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것 같아 일단 나가보고 결정하기로 한다.


만남의 장소는 양재시민의 숲역 1번 출구이고 행선지는 청계산 수변공원이다.

청계산은 젊었을 적 한때 자주 등산하며 오르던 산이다. 매봉에도 여러 번 올랐고 옥녀봉에도 올라갔다 오곤 했다. 초봄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계곡을 따라 눈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기도 하고 진달래꽃 필 때는 진달래 능선에 올라 꽃길을 걷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청계산은 과천 대공원에서나 양재천 건너편에서 멀리 바라보거나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며 스쳐가면서 추억하는 산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전철 신분당선의 청계산입구역이 생기면서 그 근처에 청계산수변공원이 조성되고 계곡을 흐르는  여의천도 정비되어 구태여 매봉이니 옥녀봉이니 높은 봉우리까지 등산하지 않더라도 청계산 계곡까지 편하게 걸으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작년 봄에 우리는 양재시민의 숲 앞에서부터 여의천을 따라 만개한 벚꽃길을 걸으며 청계산입구까지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걸었던 길의 인상이 참 좋아서 다시 한번 와 봐야지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부슬비가 내리는데도 모두 우산을 쓰고 양재시민의 숲역 앞에 열명이 모였다. 만나자마자 곧장 여의천변으로 들어서서 걷기 시작한다. 다행히 빗줄기는 세지 않다.


여의천은 청계산에서 발원하는 개천이므로 여의천을 계속 따라 올라가면 청계산계곡이 된다. 출발지점을 떠난 후 처음에는 많은 교각 아래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기가 바로 양재 인터체인지 아래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마치 지하도처럼 지상에서는 인터체인지 위를 수많은 자동차들이 빙빙 돌며 분주히  달려갈 테지만 그 복잡함은 보이지  않고 딴 세상 같다.


여의천의 인터체인지 구간을 빠져나오면 금세 멀리 보이는 산과 함께 개울물이 흐르는 시골풍경이 나타난다. 얼마 가지 않아서 내곡동 아파트 단지도 나오지만 그 앞으로는 청계산수변 공원도  보인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오늘 와보니 공사는 다 끝나고 완전히 정비된  깔끔한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 푸른색이었을 잔디마당이 이제는 노란색으로 변해서 비에 젖고 있다. 습지 주변에는 아직 무성한 갈대가 많이 남아있어 겨울풍경의 쓸쓸함을 덜어주고 있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내린다.

그리 크지 않은 청계산수변공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여의천변으로 내려가 계곡 위쪽으로 계속 개울을 따라 올라간다. 그러다 얼마쯤  가니 개울옆길은 끊어지고 왼쪽으로는 산길로 이어지고 오른쪽 청계산 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 옆 자동차길이 연결된다.


마침 이 모퉁이에 우리가 전에도 와보았던 보쌈집이 있다. 오늘은 비 때문인지 손님은 많아 보여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우리 일행만 따로 오붓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편안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에는 식당에서 서비스로 주는 커피잔을 들고 여전히 비가 오고 있으니 식당 앞마당에 쳐놓은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좁은 텐트 안에서 나이를 잊고 깔깔대는 열 명의 친구들이 빽빽이 둘러앉아 투명 비닐 막을 통해 비 내리는 바깥을 내다보면서 운치 있다면서 모두 어린애들처럼 좋아한다.

커피도 마시고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양재동 쪽으로  걸어갈 수 있지만 오늘은 청계산입구역에서 헤어지기로 한다. 빗속에서도 오늘 우리는 13000보 정도 걸었다.


저녁때면 오늘의 산행과 사진을 집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단체 수다방에 댓글을 올리는데 그 댓글이 너무 고맙고 그냥 밀어 넘겨버리기 아까워서 이 자리에 소개해 볼까 한다.


H. 가 올린 댓글이다:  

“우산이 후광처럼 뒤를 받치고 있는 환한 미소들.

신비의 커튼이 되어  푸근한 행복을 감싸 안은 비닐막.

비 내리는 12월의 스산함 속으로 서슴없이 나선 그대들이 전해준 선물입니다.

나도 푸근하고 행복하여 미소를 짓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  역시 우리는 목은산회와 목은산회의 사진에 행복을 공유하는 ᆢ ᆢ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 도 한마디한다 :

비 오는 날의 운치를 아무나 즐길 수는 없지요.

복 받은 친구들입니다. 사진으로나마 느끼게 해 주니 이 또한 감사!!


또 멀리 미국에서도 S. 가 매주 목요일을 기다린다고 글을 올렸다 :

“목은산회 올라오는 사진들과 댓글 기가 막히게 올려주는 혜수기, 늘 시 한편씩 읽는 기분이 드는 수궈니 그리고 종종 마무리 잘해주는 으니의 댓글은 이젠 사진들과 함께 늘 기다려지는 목요일 일상이 되었답니다..”  


2023년 12월 14일

매거진의 이전글 정릉 숲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