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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Dec 17. 2023

정릉 숲길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12월의 산책코스

올해 가을은 유난히 짧게 지나간 것 같다. 붉게 물든 단풍구경도 못하고 남산순환로의 금빛으로 빛나는 노란  은행나무들도 제대로 못 본채 어느새 시내의 가로수들은 마른 나뭇잎들을 모두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다. 회색빛 도시가 더욱 회색이 되어 겨울의 음울한 도시풍경을 만들어낸다. 다행히  중구 거리의 가로수는 소나무들이어서 푸르름에 대한 갈증을 약간은 풀어준다.


겨울이 되면 우리가 잘 찾게  되는 곳이 있다. 겨울에도 늘 푸른빛을 볼 수 있는 소나무숲이 있는 곳이다. 소나무는 김정희의 “세한도"와 윤선도의 “오우가"에서도 찬미되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늘푸름때문에 예전부터 소나무를 사랑하여 옛 시인들의 시나  그림에 자주 등장하고 궁궐의 정원과 왕릉 주변, 그리고 사찰 주변에도 많이 심겨 있다.

오늘은 시내에서 가까운 정릉의 소나무숲길을 걸어보려 한다. 6년 전에 개통된 우의신설선 덕분에 정릉역에서 내리면 쉽게 갈 수 있다. 아리랑시장을 지나 아리랑로 19길을 계속 올라가니 길 끝에 정릉 매표소가 보인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여름방학에 정릉계곡의 유원지에 와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은 있지만 정릉 자체를 찾아보게 된 지는 채 십 년이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정릉이 사적지로 지정된 것은 비로소 1970년이었고 그전까지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알고 보니 사연도 많은 왕비릉이다.

정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사랑을 받던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 강 씨의 능으로 원래  오늘날의 덕수궁 근처에 있었으나 계모를 미워하던 태종 이방원에 의해 한양도성밖인 현재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이후 중구에는 정동이라는 지명만 남고 북한산 계곡에 정릉동이 생긴 것이다.

나는 청소년 시절에 그렇게 오랜 세월 정동에 있는 학교에 다녔으면서도 그 동네가 이렇게 애증에 얽힌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오늘 역사에 대한 무지함을 반성하며 정릉을 바라보니 과연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작다. 이곳으로 천장 되면서 왕비릉에서 후궁묘로  격하되었을 뿐 아니라 (200년 후에야 비로소 왕비릉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무덤 주변의 석물들은 청계천 광통교를 보수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자각 뒤로 상당히 높은 곳에 자리한 능침구역에는 접근할 수 없으므로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재실 옆으로 난 숲의 산책길로 접어든다.  낙엽 쌓인 조용한 숲 속 산책길을 걷다 보니 오르막길이 꽤 나온다. 멀리 한 바퀴 크게 도는 길도 있지만 오르막길을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어서 중간 산책길이라는 표시를 따라 내려간다. 한 바퀴 도는데 채 한 시간도 안 걸린다.

정릉을 둘러보고 능침에서 나와 흥천사를 찾아간다. 흥천사는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진 절이다. 흥천사는 지도에서 보면 정릉에서 아주 가까운 것같이 보이는데 워낙 산비탈에 자리 잡은 동네에 있어 직접 연결되는 길이 보이지 않고 꼬불꼬불한 좁은 골목을 많이 지나가야 해서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흥천사 가는 길을 찾았다.  

이 흥천사의 역사도 순탄치 않아 그동안 정동에서부터 이리저리 옮겨졌다가 정조 때 이곳으로 왔다고 하며 그 이름도 몇 번 바뀌었다가 고종 때 와서 옛 이름 흥천사를 되찾았다고 한다. 오랜 창건 역사와 함께 극락보전(대웅전) 마당의 대방 앞에는 대원군이 썼다는 편액도  보인다. 절을 한번 둘러본 후에 주차장 옆 위로 나 있는 소나무숲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니 성신여대입구역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흥천사 경내를 벗어나면 흥천사길이 나오고 곧 아파트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멀리 삼거리에서 왼쪽은 아리랑고개, 오른쪽은 성신여대입구역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인다. 가는 길에 마침 소박한 샤부샤부집이 있어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점심 후에는 지하철역 쪽으로 가다가 만난 커피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늘 정릉에 다녀온 후 집에 와서 신덕왕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찾아보니 신덕왕후는 마흔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다행이라고 할지 왕자의 난을 겪지 않고 떠난 것으로 나온다. 죽은 다음에 왕비의 무덤은 여러 가지 수모를  겪었지만 말이다.


오늘은 포근한 날씨에 여섯 친구들이 만이천 보 정도 걸었다.


2023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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