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현 Dec 03. 2023

남양주 다산길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11월의 산책코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이런 인사는 예전에 노인들에게 드리는 아침 인사였는데 내가 노인이 된 지금 이런 인사가 새삼 실감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저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친구나 배우자, 또는 지인들의 부고가  들려오고  갑자기 넘어져 다쳤다거나 병이 났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오기 때문이다.

요즘에 특히 날씨가 추워지고 변덕스러워지면서 독감과 코로나 재감염등으로 노인들의 외출이 염려되는 때여서 그런지 수다방에 모임 공지가 오르면 하루 전날 저녁까지 선뜻 참여 의사를 밝히는 친구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다.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침에 일어날 때의 몸상태를 봐야  그날 걸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한다고 한다. 그러니 밤새 안녕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다산길 걷겠다는 친구는 네 명밖에 안 되었지만 오늘 아침에는 감사하게도 모두 아홉 명이나 모인다. 그것도 멀리 가야 하는 경의중앙선 팔당역에서 말이다.  

오늘은 오래전부터 걸어보고 싶었던 팔당호수 옆길로 해서 다산유적지로 이어지는 남양주 다산길을 걸어보려고 한다.

팔당역을 나와 한강나루길로 들어서니 금세 넓은 한강이 보이며 경치가 좋다. 이전에 중앙선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양평 쪽으로 가면서 6번 국도를 달릴 때면 이 강변길을 언젠가 한번  걸어 보고 싶었다. 이제 6번 국도는 팔당에서 신양수대교 까지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하며 고속화도로가 되고 중앙선 철로는 경의중앙선으로  전철화하면서 팔당역에서 운길산역으로 직접 연결되고 중간의 능내역은 폐역이 되었다.

폐역이 된 능내역 부근에 바로 다산정약용선생 유적지가 있고 다산생태공원도 있다. 능내역을 통과하던 철로는 없어지고 대신 그 길은 자전거길이 되어 보행자길과 나란히  간다.


우리가 한강변을 따라 걷는 길은 다산길 1, 2 코스이다. 강 건너 맞은편에는 하남의 검단산이 우뚝 서 있고 우리가 걷는 길 왼편에는 팔당의 예봉산이 있다. 멀리 팔당댐이 보이는데 지금은 댐에서 물이 방류되지 않아서인지 걷는 길에서 보이는 한강물은 수심이 얕아 보인다. 강물 중간에 바위들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고 그 위에서는  백로인지 왜가리인지 다리가 긴 하얀 새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댐이 가까워지자 댐의 관리교 옆으로 터널이 보이는데 봉안터널이라고 한다. 옛 중앙선 철로가 능내역으로 향하며 통과하던 터널이다. 신비한 분위기로 조명된 터널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오자 탁 트인 팔당호수가 나타난다. 드넓은 호수와 옅은 안개에 싸인 먼 산의 능선들이 이루는 풍경이 정말 그림 같고 환상적이다. 감탄을 하며 계속 걸어가다 보니 전망 좋아 보이는 카페도 나타난다. 프랑스어 인사말을 상호로 삼은  이  카페에서 점심 식사도 된다면 한번 들어가 보고 싶지만 커피와 디저트가 중심인 것 같다.  


자전거길을 계속 따라가면 능내역이 되지만 우리는 자전거길에서 벗어나서 오른편으로 산등성이를 돌아 멀리 토끼섬이 보이는 곳에서 능내리 연꽃마을로 들어선다.

이곳의 연꽃밭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모양이지만 우리는 여태 모르고 있었다. 호수 쪽으로 넓은 연밭이 펼쳐져 있다.


정약용길, 또는 경기옛길 평해길이라는 표시를 따라가니 머루터널이 나온다. 초겨울인 지금은 말라버린 줄기만 덮여 있는 머루터널이지만 여기에 푸른 잎이 달리고 옆으로 연밭에  연꽃이 활짝 피게 될 이곳의 여름 풍경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내년이 기대된다.

머루터널을 지나니 호숫가 동산 옆으로 둘레길이 계속된다.

알고 보니 이 동산에도 이름이 있다. 우리말로는 쇠말산이고 한자어로는 철마산이란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쥐 만한 쇠말이 발견되어 철마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다산선생도 자신의 호를 철마산인, 철마초부라고도 지었다고 하니 나지막한 이 동산의 이름이 꽤 오래된 것 같다.

낙엽 쌓인 쇠말산 둘레의 숲길을 돌아가면 저 멀리 토끼섬과 그 옆에 나 홀로 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이 지역을 소개하는 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풍경이다. 토끼섬은 원래 섬이 아니었으나 팔당댐이 생기면서 호수물에 잠긴 산봉우리고, 나 홀로 나무는 토끼섬으로 가는 둑길 위에 홀로 서있는 나무인데 행인들이 붙인 별명이다. 이 나무를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도끼로 훼손하였는데 지나던 등산객의 신고로 빨리 발견되어 처치를 받고 지금은 잘린 상처가  회복되어 잘 자라고 있다 한다. 이 이야기를 아는 한 친구가 궁금해하며 얼른 뛰어가더니 그 나무를 직접 확인하고 오며 나 홀로 나무의 본래 이름은 왕버드나무라고 한다.


쇠말산 둘레길을 돌아서 나오면 다산생태공원이고 여기서 다산선생의 생가와 묘소, 실학박물관이 있는 다산유적지가 멀지 않다.

우리는 이미 두 시간 이상 걸어왔으니 여간 시장하지 않다. 그런데 아무리 평일이라 해도 유적지와 그 부근이 의외로 매우 한산하여 오늘 영업하는 식당이 있을지 약간 의심이 든다. 다행히 한 식당을 발견하여 점심을 해결한다. 한옥구조이지만 창밖이 보이고 방에서 중정 마당이 내다 보이는 운치 있는 식당이다. 식당에서 몇 집 건너 옆에는 카페도 있어 후식까지 즐긴다.


다산의 생가를 비롯한 다산유적지는 대다수 친구들이 이미 전에 와본 곳이고 시간도 꽤 늦어졌으므로 오늘은 역사문화관광은 생략하고 버스정류소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다.

이곳은 다산유적지라는 명성에 비해서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 같다. 근처에 있는 천주교 성지인 마재성지까지 가보려면 시간을 더 많이 잡아야겠다.


여하튼 오늘 우리는 전부터 걷고 싶었던 풍광 좋은 팔당호숫가 남양주 다산길을 처음 걸어보았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운길산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우리가 탄 남양주 시내버스는 양수리 일대를 한 바퀴 돌아서 운길산역으로 가면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근처의 멋진 강변풍경을 다시 한번 보게 해 준다.

오늘 두 시간 반(쉬는 시간 포함) 쯤 걸었는데 17000 보가 넘는다.


 2023년 11월 23일

매거진의 이전글 남산 단풍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