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의 봄꽃 축제가 다 끝났나 했더니 여기저기서 철쭉축제 광고가 뜬다. 작년에는 군포에 수리산까지 가서 철쭉동산에 다녀오기도 했다. 올해는 서울 시내에서 가까운 곳을 찾아보다가 불암산 철쭉제를 발견했다. 검색을 해보니 이번 주말에 축제기간이 끝난다고 한다. 축제기간에는 인파가 몰리니 축제가 시작하기 직전이나 직후에 가면 사람에 부딪치지 않고 꽃구경을 잘할 수 있지만 올해는 모든 봄꽃이 일찍 피었으므로 축제가 끝난 다음 주에 가면 철쭉꽃이 다 시들 것 같다.
인파를 뚫고 다닐 것을 각오하고 철쭉제에 참여하기로 한다. 일기예보가 아침에는 흐리나 오후에는 개인 다고 하니 날씨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4호선 상계역 2번 출구에서 열세 명이 모였다. 역 대합실에는 다른 상춘객들도 역시 많이 모여든다.
역사를 나서니 불암산 철쭉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길 안내 표시도 잘 되어 있다. 그런데 철쭉동산까지 가는 길이 편안하지 않다. “한글비석로”라는 넓은 대로를 따라 직진하여 가면 되는 단순한 길인데 지금 이 길이 한창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작은 공사가 아니고 2026년에 개통한다는 서울경전철 동북선 건설의 큰 공사이다. 요란스러운 공사장 소음을 참으며 가설된 임시 보행로를 한 블록쯤 걸어가니 삿갓봉공원이라는 근린공원을 잠시 통과하게 된다.
상계역을 출발해서 20분쯤 걸으니 철쭉동산 입구에 도착한다. 철쭉동산 앞에 서니 꽃밭 풍경은 장관이다. 우람하게 서 있는 불암산 암벽 앞으로 진분홍 양탄자가 깔린 것 같다. 역시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소풍 나온 어린 유치원생들이 많이 보인다.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들이 인솔교사들을 잘 따라서 줄지어 가기도 하고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나란히 앉아 꼼짝 않고 기다리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이 아이들 모습이 너무 예쁘니 우리 할머니들은 멈춰 서서 발을 떼지 못한다. 꽃 중에 제일 예쁜 꽃은 인화초(人花草)라고 하셨다는 내 할머니 말씀도 기억난다.
철쭉동산을 계속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무척 아름답다. 일찍 핀 꽃들은 이미 많이 시들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꽃들이 싱싱하고 짙은 분홍색으로 빛나고 있다. 철쭉동산 위쪽으로 숲 속 산길에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 산책로를 따라가니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는 꽤 높은 곳에 있어 계단으로 오르거나 승강기를 타야 한다. 전망대에 오르니 불암산 정상도 아주 가까이 마주 보이고 멀리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의 아파트단지가 한눈에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둘레길을 계속 걷는데 친구들이 빨리 점심 먹게 가까운 쉼터를 찾자고 조른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도시락을 지참하자고 했더니 아마 짐이 무거워졌나 보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에 몇 군데 쉼터는 있지만 의자가 없거나 식탁이 없다. 모두 무릎, 허리들이 신통치 않아서 의자에 앉아야 하는데 아래쪽 계곡에 보이는 피크닉장에도 우리 자리는 없을 것 같다. 마침 나무 그늘 아래 빈터에 벤치 세 개가 나란히 서있다. 할 수 없으니 그 자리에라도 앉자고 한다. 일행의 일부는 벤치에 앉고 다른 사람들은 그 앞의 낙엽 위에 깔개를 깔고 바닥에 앉아 각자 싸가지고 온 김밥, 샌드위치, 컵라면으로 피크닉을 즐기는데 과일과 후식, 커피까지 나온다. 그러니 짊어지고 온 짐이 무거워질 수밖에.
점심 후에는 산책로를 마저 내려가서 생태학습관을 지나 나비정원에도 들린다.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나비온실과 곤충표본이 전시되어 있는 나비정원도 그렇지만 그 옆의 카페가 유명한지 사람들로 매우 붐빈다. 나비정원을 관람하고 나왔는데도 평소보다 일정이 일찍 끝날 것 같다.
원래 예정은 한글비석로라는 길 이름의 유래가 된 아주 오래된 한글비석이 이 근처에 있어 그곳을 찾아보기로 했었다. 이 한글비석은 “이윤탁 한글영비”라고 1536년에 세워진 최초의 한글비석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된 비석이다.
나는 20여 년 전 이 동네에 살았던 동생 집에 왔다가 한글비석이 있던 원래 위치와 원래 모습의 비석을 보고 간 적이 있었는데 그동안에 그 앞으로 큰길이 생기면서 원래 위치에서 옮겨지고 비각도 생겼다니 궁금했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한글비석까지 갈 수 있는 길은 공사 중이어서 너무 복잡하고 험난?하며 소음도 심하다. 지도상으로는 걸어서 20분이면 갈 테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포기하고 나중에 다른 길을 찾아보아야겠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과는 반대 방향 아침에 출발했던 상계역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점심에 불암산 산책길의 편하지 않은 자리에서 여유 없이 피크닉을 해서 그런지 다른 때보다 점심시간이 짧아져서 일찍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헤어지기 섭섭한 우리 친구들, 나머지 점심시간을 역 앞의 빙수집에서 꽉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모두 만족해서 상계역으로 간다.
오늘은 철쭉동산과 불암산 숲길을 꽤 걷고 집에 왔는데 만 이천보가 채 안 된다.
2024년 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