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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Nov 22. 2024

월드컵 하늘공원 억새밭

나뭇잎이 이제야 물들기 시작하나 보다 했더니 초록색잎이 마른 채로 그냥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다.  올가을에는 단풍 드는 시기도 늦고 색깔도 곱지 않다고 라디오에서 매일 보고한다.


서울 주변에서 단풍구경은 아직 이르다 해도 한창 핀 억새는 보러 갈 수 있다.

지난 주말에 상암동 월드컵공원 하늘공원에서 억새축제가 있었다고 하니 오늘은 억새가 많이 피어 있을 것 같다. 작년에는 축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급한 마음으로 일찍 갔더니 억새가 덜 피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6 호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에서 열한 명이 모였다. 출구 앞은 예상한 대로 억새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우리는 일단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경기장 남문 쪽 계단으로 올라간다. 남문 앞에 가면 길 건너편의 평화광장과 평화공원으로 넘어가는 넓은 육교가 있기 때문이다.

평화광장 가는 길 옆 주차장 주변에 늘어선 가로수들이 이제 단풍이 들기 시작해서 비로소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여기서 오른편으로   하늘공원으로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에는 사람들이 촘촘히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하늘공원으로 곧장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우회로를 택하여 계단 입구 직전에서 왼편으로 난 메타세쿼이아 숲길로 들어선다. 이 길은 우리가 좋아해서 자주 오는 길이다. 메타세쿼이아 나뭇잎은 아직도 푸른색이지만 머지않아 그 잎이 적갈색으로 물들겠지?  

첫 번째 메타세쿼이아길이 끝나면 하늘공원 입구가 나온다. 지난 9월 초에 여기 왔을 때는 강변 자유로 옆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메타세쿼이아길로 계속 걸어갔으나 오늘은 그리로 가지 않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이 길은 맹꽁이차가 다니는 차도와 인도가 함께 올라 가는데 오늘은 맹꽁이차가 전 보다 더 자주 다니고 차마다 승객으로 꽉 차있다. 억새축제는 끝났어도 가을 풍경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길에는  나뭇잎들이 벌써 떨어져 버려 앙상해진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이삼십 분 정도 숨차게 올라가면  하늘공원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우리를 맞이한다. 표지석 뒤로 드넓은 억새 벌판이 펼쳐진다. 억새밭 초입에는 정자도 한 채 있는데 정자 주변에는  댑싸리밭이 있어 은색 벌판에 연붉은 색을 가미해 준다. 몇 년 전에는 이곳의  코스모스 밭이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억새가 우거진 샛길로 들어가서 하얗게 부푼 억새꽃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고 맑은 하늘이 정말 아름답다. 늘 머릿속에 그리며 담고 있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전형적인 가을하늘이다.


미로 같은 억새밭 샛길을 이리저리 조금 더 걸어보고는  더 깊이 들어가면 길도 잃고 친구들도 놓칠 것 같아 큰길로 나와서 한강 전망이 좋은  전망대 쪽으로 간다. 이곳에서 보는 한강과 성산대교 건너편의 서울의 강변 풍경이 늘 아름다웠지만 오늘은 맑고 투명한 하늘색과 대비되어 강 건너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유난히 흐릿해 보인다. 미세먼지에 싸인 강변 풍경을 내려다보며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아 유감이다.

이 전망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앉아서 쉴 벤치가 넉넉하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나무 아래 여기저기 빈자리에 두셋 씩 끼어 앉아서 각자 가져온 음료와 간식을 나누며 즐거워한다.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후에 다시 억새밭을 통과해서 하산길에 들어선다. 내려가기 전에 올해의 억새밭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겠다고 매점이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가 본다. 여기서 보는 억새밭은 은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와도 같아 장관이다.

억새야 내년에 보자! 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내려가려는데 갈림길에서 몇 친구들이 하늘계단으로 내려가보겠다고 한다. 평소에 계단을 회피하던 친구들이었는데 오늘은 웬일이지 하면서 하늘계단을 내려가는데 내려가면서 보는 경치가 또 기가 막히다. 월드컵경기장과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평화공원의 숲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그 많은 계단을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내려와서 흰머리 소녀들은 모두 개선장군처럼 뿌듯해한다.


이제 마무리하러 월드컵경기장 쇼핑몰 안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지난번 꽃무릇 보러 왔을 때에는 푸드코트 안의 이태리 식당으로 갔으니 오늘은 반대편에 있는 한식당으로 간다. 이곳은 비교적 조용해서 한 사람씩 키오스크에서 주문해도 뒤에서 줄지어 기다리며 재촉할 사람이 없으니 마음 놓고 여유 있게 주문한다.


점심 후에 카페를 찾아갔으나 유난히 사람이 많아서 들어가지 못한다. 일찍 헤어지기는 섭섭하지만 오늘은 그만 해산하기로 한다.


오늘은 10.2km, 13500보, 2시간 20분 걸었다.


집에서 하늘공원 산행 사진을 본 카톡방 한 친구가 저녁때 한 편의 시 같이 멋있는 댓글을 올린다:

“오손도손 한 마디 씩 주고받으며  오색 풍경 나눠 보는 친구들 등뒤로 깊어진 가을 향내가 짙게 감도네요...   마른 잎 억새 사이로 햇살도  희게 옅어집니다”  


2024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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