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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 가족공원

by 지현

눈이 녹아 빗물이 되고 겨울이 마무리되고 봄이 시작된다는 절기 우수가 엊그제 지나갔지만 아직도 매일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7-8 도가 계속되며 올라갈 줄을 모른다.

게다가 오늘 낮에는 세찬 바람까지 예고되어 있어서 오늘은 어디서 걸을까? 생각하다가 우리의 전천후 산책 장소인 용산의 박물관 정원을 걷기로 한다. 바람이 너무 세면 야외에서는 조금만 걷고 박물관 안 실내에서도 걸을 수 있으니까.

전철 4 호선과 경의중앙선이 만나는 이촌역에 열명이 모인다.

낯선 꼬마 손님이 하나 있어 누군가 했더니 H 의 손녀란다. 베트남에 살고 있는 아홉살 소녀로 봄방학을 맞아 고국의 할머니 댁을 방문 중인데 할머니가 친구들과 박물관에 간다니 따라 나섰단다. 할머니들과 어울려 보겠다니 기특하고 귀엽다. 붙임성있게 할머니 친구들에게 말도 잘 걸고 아주 사교적이다.

이촌역 출구에서 나와 먼저 용산 가족공원을 향해 걷는다. 가는 길에는 한글박물관 옆으로 돌아 가는 길이 있었으나 얼마 전에 있었던 한글박물관의 화재로 인해 현재는 복구 중인 모양으로 지금 그길은 막혀 있다. 손실이 크지 않았으면 좋겠고 빨리 복구가 되어야 할텐데.

소나무 숲과 탑이 많이 서 있는 석조물 정원을 지나서 미르 폭포 앞에도 들려 보고 용산 가족 공원으로 넘어간다.

가족 공원의 연못을 돌아가면 동쪽 귀퉁이에 텃밭이 있는데 동네 주민들이 가꾸고 있는 텃밭이다. 밭고랑의 흙바닥이 얼었다 녹아서 질척해진 것을 보니 봄이 오기는 오나 보다. 눈이 좋은 한 친구는 버드나무 줄기에 연둣빛 물이 오르고 있음을 재빨리 발견한다.

그러나 아직은 쓸쓸한 겨울 풍경의 가족 공원을 한 바퀴 크게 돌고 다시 박물관 쪽으로 간다. 베트남에서 온 꼬마손님을 위해 복제된 보신각 종도 한 번 더 보고 절터의 주춧돌과 석조 불상들도 감상하고 거울못 가의 청기와 지붕을 얹은 청자당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는다.

우리의 꼬마 손님은 호기심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 끊임없이 질문하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한 시간 좀 넘게 야외에서 산책을 마치고 전시동 앞에 이르니 관람객이 꽤 많다. 특히 왼편으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이라고 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장 입구에 사람들이 더 붐빈다.

그러나 우리는 본관으로 들어가서 특별 기획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를 보러 간다.

도자기로 만든 여러 가지 동식물의 형상들, 특히 인물상들은 묘사가 아름답고 정교하기가 그지없어 그것을 만든 장인들의 솜씨가 다시금 경이롭게 느껴진다.

전시장을 나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박물관 끝 쪽 경천사탑 앞에 있는 식당을 향해 간다.

박물관 복도에는 여기저기 어린이들 대여섯 명이 그룹을 이루어 많은 어린이들이 바닥에 옹기종기 앉아서 선생님들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봄방학 중의 특별활동 인가보다.

밖에서 뛰어 다니는 야외활동이 건강에 더 좋을 것 같은 나이인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전망좋은 경천사탑 식당은 언제 와도 사람이 많다. 우리는 대기 번호를 받고 기다렸다가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창가에 자리를 마련해준다. 식탁 위의 태블릿 메뉴에는 한식도 있고 간단한 양식도 있어 선택의 여지가 꽤 있다. 주문은 식탁의 태블릿에서 한다.

점심 후에 전시관 건물에서 나오니 여전히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전철역 가까이 앞마당에 있는 카페를 찾아갔으나 만원이어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

아쉽지만 커피는 포기하고 귀가하기로 한다.

오늘 찬 바람 속에서도 11000 보는 넘게 걸었다.


2025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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