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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국립박물관 정원

by 지현

아침부터 봄비가 내린다.

오늘은 원래 모란꽃을 보려고 용산 박물관 정원에 가고자 했다. 그런데 비가 오고 있으니 몇 년 전에 이곳에서 보고 감탄했던 모란꽃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 쓰고 걷기를 좋아한다는 친구들이 있어서 우선 계획대로 걸어보기로 한다.

4호선과 경의중앙선이 만나는 이촌역에서 열두 명이 모였다.

모두 우산을 쓰고 곧장 모란꽃이 피어 있을 후원으로 찾아간다.

우리가 서울에서 처음 모란꽃을 본 것은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뒤편 아미산 굴뚝정원에서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용산 박물관 정원에서도 모란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란을 보려면 박물관 본관을 왼편으로 돌아 진달래, 철쭉이 연달아 피는 길을 따라 주차장 쪽으로 가다가 주차장에서 대극장 입구로 가는 길 옆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된다. 대극장 현관 앞에는 경복궁의 아미산 굴뚝 정원을 본떠서 만든 정원이 있다. 아름답게 조각된 아미산 굴뚝의 모형들도 서 있고 굴뚝 주위에는 계절에 따라 갖가지 꽃이 피어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원 가득히 백매화, 홍매화,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복숭아꽃이 만발했었는데 이제는 철쭉마저 다 시들어 가고 모란꽃이 만발할 때이다.

그러나 꽃 중의 꽃, 꽃 중의 왕이라고 불리는 모란꽃이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란은 봄비를 맞아 힘없이 쳐져 있어 그 모양이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떤 친구가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너무 해!”라고 반박하면서도 모두 씁쓸하게 미소 짓는다.

박물관 후원을 조금 더 걸을 수도 있지만 빗줄기가 더욱 세차게 내리므로 매화동산과 작은 연못 사이에 지붕 있는 쉼터에서 잠시 비를 피해 쉬어 가기로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빗줄기가 약해지지 않고 비에 젖은 옷이 한기를 느끼게 하니 더 이상 야외에서 걷는 것은 포기해야겠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박물관 정원과 연결되어 있는 용산가족공원까지 한 바퀴 돌고 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쩔 수없이 상설전시관 실내에 들어가 그 안에서 거닐며 둘러보기로 한다.

그런데 오늘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고 휴일인지라 사람들이 많아서 전시관 안은 매우 북적인다. 그러지 않아도 외국인 관광객과 학생들이 많은 곳인데.

평소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던 3층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관한 전시실부터 일본관, 중국관 등 몇 군데 전시실을 오래간만에 꼼꼼히 돌아보고 나니 어느덧 식당에서 예약한 시간이 되었다고 알림이 울린다.

남산과 남산타워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박물관식당, 경천사탑 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온다.

식당에서 나와 오래간만에 우리도 서울 구경 온 관광객처럼 경천사탑 앞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체로 기념사진도 한 장 찍어 본다.

점심 후에는 빗줄기가 좀 약해졌으므로 본관 앞 거울못 호숫가를 크게 돌아서 야외박물관 소나무 숲길을 통해 다시 지하철역 쪽으로 간다.

오늘은 활짝 핀 모란꽃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무척 섭섭했지만 그래도 그 옆에서 개화기를 기다리며 꽃봉오리를 부풀리고 있는 작약꽃이 필 날과 내년 봄에 다시 필 모란을 기대해 보면서 집으로 젖은 발길을 향한다.

지하철역 입구 호숫가에 서 있는 소나무는 노랗게 핀 송화꽃으로 뒤덮여 있다. 송화를 보면서 한 친구는 어렸을 적 다식을 만들기 위해 송홧가루를 받는 것을 본 적 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은 만보가 안 되는 9000보쯤 걸은 것 같다.


2025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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