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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60주년 기념여행

춘천, 설악, 강릉

by 지현

여행 첫날


올해는 우리가 여고를 졸업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53 동창회에서는 졸업 60주년을 맞아서 강원도 쪽으로 1박 2일의 기념여행을 가기로 기획하였다.

압구정 전철역 출구 앞에서 여행팀이 모였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 해외에서 오랜만에 귀국한 친구들을 포함해 모두 47 명이다.

전날 있었던 총회 기념식에서 이미 만났던 60여 년 전의 동창들이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가워하며 서로 껴안는다.

너무 오래간만에 만나서 느낄 수도 있을 낯섦은 싹 가신 것 같다.

버스 두 대중 배차된 1호차에 설레는 마음으로 올라탄다.

경춘 고속도로를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춘천의 김유정 문학촌이다.

경춘선 열차를 타고 김유정역을 지나간 적은 있지만 김유정 문학촌에 와 보기는 처음이다. 한국 현대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유정 소설가의 생가를 중심으로 기념전시관과 이야기집, 체험관 등 여러 동의 건물들로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김유정 생가로 들어가 마당을 둘러싼 마루에 둘러앉아서, 또 전시관에서 김유정 선생의 삶과 작품에 관한 해설을 보고 들으며 여고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작가의 단편소설 “봄, 봄”과 “동백꽃”을 오랜만에 머리에 떠올렸다. 전시관에서 나오면서 서산 해미에서 온 친구가 자신이 자기 동네에서 독서 클럽을 주관하고 있다면서 집에 돌아가면 김유정 선생의 다른 작품들 (우리가 몰랐던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도 읽어 봐야겠다고 말한다.

김유정 문학촌을 떠나서 버스를 타고 의암호를 한 바퀴 천천히 돌며 구경하고 난 다음 춘천 시내로 들어가서 번화한 거리에 있는 춘천의 이름난 닭갈비집으로 점심을 하러 들어간다.

요란하고 떠들썩하게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버스는 설악산으로 향한다. 산들이 첩첩이 겹친 강원도의 산속을 달리다 보니 예전에 이 산골에 살던 사람들은 논밭이 없는 이런 곳에서 얼마나 먹고살기가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감탄만 하고 있지만.

설악산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거의 된다. 입구에서는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신흥사 쪽으로 또 한 팀은 비룡폭포 쪽으로 산책하고 6시까지 모이기로 한다.

그런데 신흥사 팀은 제시간에 왔으나 비룡폭포 팀은 약속 시간에 늦는다. 일행 중 몇 사람이 내려오다가 선두를 놓치는 바람에 딴 길로 오느라고 늦었단다. 결국 우리는 켄싱턴호텔에 도착하기는 하였으나 식사시간에 맞추느라고 방에 가서 짐도 풀지 못하고 곧장 저녁식사가 준비된 지하 1 층의 연회장으로 들어간다.

뷔페 식으로 마련된 저녁식사는 푸짐하다. 식탁에는 포도주까지 준비되어 있다.

식후에는 노년기의 척추 건강에 관한 회장의 간단한 강의와 이어서 경품 행사가 진행된다. 경품행사는 퀴즈를 맞히는 것이었는데, 퀴즈는 낮에 관람하고 온 김유정 문학과 문학촌에 관한 질문이었다. 꽤 까다로운 질문들도 있었는데 답을 많이 맞힌다. 답을 맞히고 상품을 받고 좋아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아이들처럼 밝아진다.

저녁 8시 반에 식사시간은 끝나고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가서 자유시간을 갖기로 하고 여행 첫날의 밤을 맞이한다.


여행 둘 째날


아침에 일어나니 호텔 앞 권금성 산봉우리가 안개구름에 잠겨있다. 빗방울도 떨어지는 것 같다.

7시에 아침을 먹고 8시에 호텔에서 출발한다.

오늘의 첫 번 행선지는 강릉의 선교장이다.

선교장은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의 후손이 지었고 대대로 그 후손들이 300여 년을 살아온 집이다.

선교장 입구에 도착하니 예쁜 우산을 쓴 해설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가늘게 내리던 비는 이제 그쳤다.

우선 처음 보이는 큰 연못가의 활래정에서 시작하여 본채에 들어가서 건물 한채한채마다 해설사는 상세하고 명쾌하게 재미있는 설명을 해준다.

왕실 가족 후손의 가옥이라고 모두가 이렇게 잘 보존하고 유지하지 못했을 텐데 선교장은 지금까지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남아 있는 후대의 사람들이 역사적인 전통한옥의 진수를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해설사가 꼭 보고 가라고 한 선교장 민속박물관 안에는 대대로 한옥에서 사용되던 고가구나 그릇 등 옛 물건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곳에는 화각장이나 어렸을 적 보던 자개장도 있고 놋그릇도 있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나오기 전에는 명절이 오면 옛날 어머니들은 수세미에 재를 묻혀 놋그릇을 반짝거리게 닦으며 명절 준비를 했었는데..

진열장에 놋그릇들이 놓인 옛날 밥상을 발견하고 그 많던 놋그릇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전통한옥과 그 안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보고 옛 선조들의 삶을 다시 한번 상상해 보며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선교장과 민속박물관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한옥 체험도 가능하니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와서 하룻밤 묵으며 여유 있게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후다닥 전시관을 돌아보고 그다음에 간 곳은 강릉 중앙 시장이다. 동해안을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한번 들렀다 가는 큰 시장이다. 휴가철이 아니라 그런지 시장이 붐비지는 않는다. 친구들은 소소한 물건도 사고 간식거리 건어물도 집어 들며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온다. 시장에서 나오니 월화거리라고 넓은 길이 나온다. 이 거리가 강릉의 야간명소라고 하며 조명등이 줄지어 달려있다. 이 월화 거리의 끝이 어딘가 하고 계속 따라가 보니 월화교라는 다리에 이르는데 이 다리는 강릉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월화교에 올라 넓게 펼쳐진 남대천 주변 강릉 시내 풍경을 잠깐 보고 얼른 버스로 돌아온다.

그다음에 간 곳은 허난설헌 기념공원 주차장 옆에 있는 초당순두부집이다. 소박한 한옥을 개조한 식당인데 강릉의 맛집인가 보다.

시간이 부족하여 허난설헌 기념공원은 들어가 보지 못한다. 초당은 허난설헌의 아버지인 허엽의 호이기도 하고 이 부근의 지명이라고 한다. 초당의 물이 맑아서 그 물로 만든 두부가 맛있기에 초당두부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점심 후에는 동해안에서 유명한 안목 해변으로 향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어 보기도 하고 유명한 커피 거리에서 커피도 마실 생각을 하며 모두 들떠 있다.

안목 해변으로 말하자면 60여 년 전 필자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가 중학교 3학년 생이었을 때 어린 동생들 다섯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와 보았던 곳이다. 그 당시에는 영동 고속도로가 놓이기 전이어서 서울에서 강릉까지 대관령고개를 넘는 구불구불한 비포장 국도를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도중에 버스가 타이어의 바람이 빠지는 바람에 타이어를 고치는 동안 승객들은 길가에 앉아서 기다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하루 종일 걸려서 저녁때쯤 도착한 안목 해변은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어떻게 그런 소문도 안 난 어촌을 여름 휴가지로 택하셨냐고 필자가 나중에 어머니께 여쭈어 보니 이웃집 아저씨의 추천을 받으셨단다. 영업 일을 하시느라고 여러 지방을 다녀보신 그분은 당시에 동해안 휴가지로 한창 떠오르던 경포대 해수욕장은 해변의 경사가 급하고 수심이 깊어 아이들이 해수욕하며 놀기가 좋지 않으나 안목해변은 수심이 얕아 아이들 놀기에 적당하다고 하셨단다. 과연 안목 바다의 물이 깊지 않아 필자의 남매들은 잘 놀고 온 기억이 있으나 30대 말의 어머니는 어린 6남매(막내는 생후 8 개월)를 데리고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첫날부터 몸살이 나서 바닷물에 몸을 적셔보지도 못했다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여름철 바닷가에서 햇볕에 몸을 잘 태우고 놀고 와야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자식들을 위해 그런 힘들고 모험적인 휴가여행을 감행하신 것이다.

어머니가 그때 하셨던 일은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었을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안목 해변에 도착하니 60여 년 전의 물고기를 말리던 어촌의 흔적은 간데없고 이름도 강릉항이라고 바뀌어서 아주 현대적인 항구의 모습을 갖추고 카페거리가 해변에 길게 이어져 있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은 신이 나서 얼른 신발을 벗고 맨발로 물가를 향해 뛰어간다.

한동안 모래사장을 걷다 보니 커피 마실 시간이 부족하다. 한 친구가 추억의 카페라고 데려간 곳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 커피는 못 마시지만 전망 좋은 자리에 잠깐 만이라도 앉아보자고 하며 앉았다가 하는 수 없이 버스 출발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돌아가는 수밖에.

다음 행선지는 강릉 솔향수목원이다.

솔향이라는 이름답게 입구부터 울창한 소나무숲이 범상치 않다. 국립수목원으로 규모가 상당히 커 보이고 계곡이 구석구석 예쁘게 꾸며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멀리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내려오면서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좋은 수목원을 알게 된 것만 해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솔향수목원 관람을 끝으로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것 같다.

버스는 문막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죽전을 거쳐 서울 시내로 들어와 양재역, 강남역, 논현역, 신논현역에서 차례로 우리를 내려준다. 또 다른 버스는 어제 아침에 출발했던 압구정역으로 간다. 이틀의 여행 중에 더욱 친근해진 옛 친구들은 모두 내년에도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한다.

1박 2일 일정의 여행이지만 장 기간의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 그만큼 여러 곳을 옛 친구들과 함께 긴긴 옛날 이야기하며 추억여행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2025년 5월 21일-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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