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매공원 국제 정원 박람회

by 지현

6월 달력을 넘긴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며칠이 훌쩍 지나갔다.

올해 101세 되시는 라니씨의 어머니는 일요일에 딸이 뵈러 갈 때마다 “얘야, 난 요즘 매일 달력하고 싸우고 있단다. 하루는 느리게 가는데 달력은 왜 이렇게 빨리 달려가는거니?” 라고 말씀하신다.

라니씨도 이번 달 달력을 또 한장 넘기며 새삼 어머니의 말씀을 실감했다.

얼마 전 지하철 안에 앉아 광고화면에서 “보라매공원 국제 정원박람회”라는 광고를 보았다. 보라매공원이라고? 서울에 있지만 복잡한 도심의 근린공원 중 하나려니 하고 이름만 알고 무심하게 지나던 공원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우연히 본 유튜브 방송에서 또 보라매공원을 보여주지 않는가? 국제 정원박람회가 열린다고 화면에서 보여주는 보라매공원은 상당히 넓어 보인다. 그러니 국제 정원박람회도 개최할 정도가 되지 않겠나?

화면에서 보는 공원은 시내에 있지만 주변에는 고층아파트들도 별로 안 보이고 멀리 나즈막한 산의 능선까지 부드럽게 펼쳐져 보이는 것이 꽤 유혹적이다.

그래서 인터넷 자료에서 찾아보니 보라매공원 자리는 예전에 1985년까지 공군사관학교가 있다가 그 학교가 청주로 이전한 다음에 공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원 이름이 한국 공군의 상징인 보라매가 되어 흔적만 남았다.

알고 나니 역사적인 공원인데 그 동안 서울 시민으로 몇 십년 동안 살면서 너무 무심하게 지나친 것 같다. 서울에 안 가 본 곳이 아직도 많구나!

어쨌든 오늘은 못 가본 보라매공원에 가서 걷고 정원박람회도 구경 하기로 한다.

2호선 신대방역 4번출구에서 모두 열명이 모였다.

모두 모였을 때 물어보니 라니씨 외에도 보라매공원에 와 보았다는 친구가 몇 안 된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역에서 나오니 곧 보라매공원과 정원박람회장으로 가는 화살표가 바닥에 그려져 있고, 공원안에서 장애인 단체의 행사가 있는지 행사를 알리는 입간판도 서 있다. 얼마 가지 않고 보라매공원 남문 입구에 도착한다. 평일인데도 행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공원은 사람들로 붐빈다. 박람회와 관계되는 부스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잔디밭의 나무 그늘 아래서는 발달장애아들이 사생대회에 참여하여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래되고 우람한 나무들이 늘어선 가로수길을 돌아가니 여러 기업이나 개인창작자들이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정원들이 보인다. 온갖 꽃들로 장식된 정원 앞에서 사람들은 사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요즘 사진은 자신이 본 장면을 저장하기 위해서보다는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사진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러니 셀카를 그렇게 많이 찍는 것이 아닐까?

분수가 솟아오르는 연못가 길옆 벤치에서 모두 일렬로 앉아서 간식을 나누며 쉬어간다.

위치 좋은데 있는 피크닉 테이블은 이미 모두 꽉 차 있어 빈 자리는 생각도 못 하기 때문이다.

준비성 있는 사람들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둘러 앉아 있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공원을 거의 한바퀴 돌았을 때 한 옆으로 와우산 둘레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영상에서 멀리 보이던 산인데 와우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여기도 있었구나? 홍대 뒷산도 와우산인데?하며 숲길이 좋아 보여 한번 올라가 보려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꽤 길게 이어지므로 몇몇 친구들은 올라가지 않고 아래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올라가는 도중에는 보라매 법당이라는 절도 있고 더 올라가니 숲길이 이어지고 있어 걸을 만 하기는 하겠는데 아래서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어 도중에 하산한다.

공원을 좀더 돌아 본다면 예전 공군사관학교의 흔적을 볼수 있는 에어파크도 있다지만, 점심시간도 다가오고 시간이 부족해서 공원을 조용히 걸어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국제정원박람회는 10월까지 계속된다니 그 사이에 한번 더 와 볼만 하겠다.

오늘은 난생 처음 와 보는 역사적인 보라매공원을 걸어보고 국제정원박람회장을 둘러본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다.

분수연못 옆에 서서 동쪽을 보니 보라매 병원과 롯데타워가 높이 보인다. 그 근처에 가면 식당들이 있으려니 생각하며 공원의 가로수길을 빠져 나온다.

백화점 식당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길 건너편에 보이는 빙수 집에서 후식 시간도 갖는다. 빙수는 몇달 전 손자가 대학에 입학했다는 친구가 초대하여 그와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큰길을 꽤 걸어 신림역으로 가서 그곳에서 헤어졌다.

오늘도 12000 보 이상 걸었다.


2025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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