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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n 21. 2023

물향기수목원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6월의 산책코스

물향기수목원?  그 이름이 참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7년 전에 처음으로  물향기수목원을 찾았고 오늘 오래간만에 그곳을  다시 찾기로 한다.

우리가 10년 전에 걷기 모임을  시작하며 초창기에는 서울 주변 산들의 둘레길이나 고궁, 공원을 산책하자고 했다.  

마침 그 당시 서울둘레길이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울 시민들의 관심이 모이던 터라 우리도 먼저 둘레길 걷기를 시도하기로 했다.  


우리가 젊었을 적에는 정상정복을 목표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인왕산, 청계산 등에서 등산을 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산자락에 잘 만들어진 둘레길, 자락길을 걸으며 서울 주변의 여러 산을 굳이 정상까지 높이 올라가지 않고도 숲길이나 오솔길을 걸으며 산을 가까이에서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속으로 우리 나이와 체력에 맞게 산책문화도 바뀌며 발전해 간다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모르는 사이에 세월은 흐르고 우리의 신체는 마음보다 더 빨리 늙어가나 보다.  어느새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차고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이 편치 않아 나이 탓을 하게 되는 친구들이 늘어난다.  그러니 아무리 걷기 쉽다는 둘레길이라 해도 북한산이나 도봉산 근처에 가면 오르내리는 길이 많으므로 이제는 '서울둘레길 완주'라는 애초의 야무진 꿈은 접고 가능한 한 평탄한 길을 찾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동안에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는 산책길이 잘 만들어져서 가까이에 걸을 곳이 많이 생겼다.

한동안 서울 안에서,  고궁이나 공원,  자락길 등에서 걷다가 범위를 넓혀 보자고 찾은 곳이 서울 근교 오산의 물향기수목원이었다.  

이름도 매력적이었지만 서울서 가기는 멀어도 일단 1호선 오산대역 전철역에서 가깝다는 점이 끌렸다. 그래서 7년 전 물향기수목원을 처음 방문했는데  그 당시에는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006년 개원) 아직 나무들도 어리고 정비가 덜 된 상태였던 것 같다. 6월 이맘때여서 햇볕은 뜨거웠고 특히 인상적인 곳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미로정원이라는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충분히 걷기도 했다고 만족해하며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 물향기수목원에 수국원이 좋다는 정보를 듣고 솔깃하여 여기 가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가는 수목원이라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이다. 그런데 금정역에서 환승하려고 1호선 신창방향 전철을 기다리는데 웬일인지 전철이 오지 않는다.  안내창에는 철도노조 태업으로 인해 열차운행이 지연된다고 안내문이 떴고 열차는 언제 올지 예상시간이 뜨지 않는다.  일행과의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세상에!  이런 일은 이 모임을 시작하고 처음 겪는 일이다.  할 수 없이 오산대역에서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먼저 이동하도록 연락하고 나는 뒤따라가기로 한다.

30분 이상 기다리다가 도착한  열차를 열차를 겨우 타고 오산대역에서 내리니 두 친구만 남아서 늦게 도착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미안하고 고맙기 짝이 없다. 다른 일행은 수목원에 먼저 가서 초입에 있는 쉼터 벤치에서 기다린다.

7년 만에 다시 와보는 물향기수목원에 들어서니 기대 이상이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거의 10년 전의 어린 나무들이 훌쩍 자라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시원하게 그늘진 숲길을 만들고 있다.

추천관람로를 따라 걸어가다 만난 수생식물원 연못에는 수련꽃이 한창 피어있고 산수국도 피어 있으며 단풍나무숲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단풍나무들이 많이 심겨 있다.  

가을에 단풍구경하러 또 와야겠다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소나무숲길도 아름답고 돌아볼 곳이 아주 많다고 생각하며 걷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예보된 소나기여서 모두 우산은 준비해 왔지만 이렇게 세찬 비는 피해 갈 수밖에 없다.  

비를 피할 곳을 찾는데 마침 근처에 사무동 건물이 있어 그곳 현관 앞에서 잠시 비를 피해 가기로 한다.  건물이 꽤 커 보여서 혹시 이 안에 식당이나 카페가  있을까 하고 들여다본다.  건물안내판에 지하에 식당이 있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관 로비에 한 직원이 서서 소낙비 때문에 몰려들어온 관람객들의 입장을 막느라고 분주하다.  식당이라고 한 것은 아마 직원들을 위한 구내식당을 말하나 보다.  그런데 이렇게 넓고 멋진 수목원 안에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 식당, 매점, 자동판매기,  카페등이 하나도 없다니 정말 아쉽다.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에는 원내 식당이나 카페에 앉아서 안개 낀 수목원의 숲을 내다보며 비에 젖은 풍경을 감상한다면 더욱 운치가 있을 텐데…  


좀 전에 지나온 전망대 안에도 앉을자리는  없었다.  쉼터라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비가리개는 없다.  수목원에 왔으니 쉼터에서 얼른  도시락이나 먹고 꽃이나 나무,  풀이름이나 열심히 외우며 식물공부만 하다 가란 말인가?  아쉽다.


우리의 관람시작이 늦기도 했고 지나가는 소나기 피하느라고 시간이 꽤 지나갔다.  수목원의 반의 반도 못 돌아보았는데 말이다.  산림전시관도 은방울 온실도, 미로정원도 못 보고  무엇보다 소문난 수국원을 들리지 못했다.  그래, 다음에  와서 볼 곳도 남겨놓아야지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미련을 품은 채 출구를 나와 점심 먹을 식당을 찾으러 간다.  근처에 갈비탕집이 있어 푸짐한 왕갈비탕과 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건너편에 있는 소품장식이 예쁜 아담한 카페에서 뒤풀이까지 한다.  

오늘의 점심과 후식음료는 모임의 두 친구가 초대했는데 한 친구는 코로나에 걸렸다가 치유되어 오래간만에 나왔고, 또 한 친구는 고관절골절 수술 후 몇 달을 같이 못 걷다가 이제 완전히 회복해서 걸을 수 있어 기쁘다고 자축하는 의미에서 초대하는 거란다.  

누가 누구를 초대해야 하는지 주객이 전도됐다는 생각도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기쁨을 여럿이 함께 나누려는 친구의 예쁜 마음이  그저 고맙기만 해서 초대를 거절하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여행은  아침과는 달리 비교적 순조로웠다.   물향기수목원이 아무리 멀어도 우리의 산책코스 목록에는 꼭 들어가야겠다.


2023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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