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 주째 비가 온다. 내 작은 집에도 빗소리가 들이친다. 큰방 창문은 베란다로 나 있어 방문을 닫으면 바깥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빗소리가 들이친다. 며칠 전에는 우렁찬 천둥소리 때문에 달콤한 낮잠에서 깨기도 했다. 집이 웅웅 울리는 경험은 처음이다. 만약 이 집이 30년 된 구옥이 아니었다면 부실 공사가 아닐까, 의문이 피어올랐을 법한 소리였다. 새벽녘에도 한차례 깼으니 날이 유달리 궂었던 듯싶다.
옷방은 습기가 가득 찼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전에 세 들어 살던 이의 엉망인 생활 습관 때문에 곰팡이가 폈던 곳이다. 곰팡이를 제거하고 방지하는 도배지를 발랐는데도 걱정스럽다. 들어설 때마다 어항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빨래도 잘 마르지 않아 얼마 전 제습기를 하나 구매했다. 작은 집이라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혼자라 최소한의 짐으로 생활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맥시멈 리스트가 되어간다.
궂은 날씨가 이어진다는 핑계로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보따리상처럼 온갖 잡동사니를 가방에 쑤셔 넣고 다니는 성격 탓에 비가 오는 날에는 외출이 쉽지 않다. 우산을 써도 가방은 늘 젖는다. 짧은 바지나 치마를 즐기지 않는 터라 옷을 고르는 것도 일이다. 젖어도 티가 안 나는 혹은 젖지 않는 길이의 바지를 골라야 하는데, 옷이 몇 없어 장마철에는 단벌 신사가 되기 일쑤다.
우산을 챙기는 것도 귀찮다. 우산꽂이가 마련된 카페나 식당에 가면 그곳을 나서는 순간까지 노심초사다. 밥을 먹어도, 커피를 마셔도 시선은 우산꽂이 속 내 우산 손잡이를 향한다. 누가 내 우산을 가져가진 않을까, 굉장히 좋아하는 건데. 좋아한다기에는 그냥 까만 장우산일 뿐이지만 행여 잃어버리면 무척 속상할 것 같다. 싫다, 내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비가 오면 담배 피우는 것도 일이다. 고개를 꺾어 어깨에 걸친 우산을 지탱하고 담배에 불을 붙여야 한다. 비 오는 날에는 대개 바람도 함께 불기 때문에 라이터 불이 여러 번 꺼지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게 조금 짜증 나지만 어쩌겠는가. 끊지 못한 내 탓이지. 왼손에 우산을 들고 어깨에 멘 가방을 앞춤으로 끌어당긴 채 담배를 피운다. 일단 담배에 불을 붙이면 아까의 수고는 사라진다. 그래도 비가 오는 날 담배 피우는 건 일이다.
여하튼 요새 난 그렇다. 지난주에는 3일이나 밖에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며칠 담배도 태우지 않았다. 담배를 새로 사러 나가기조차 귀찮았던 것이 이유다. 그렇게 금연을 이어갔다면 좋았으련만 병원이라던가 학원 등의 이유로 나는 외출을 해야만 했고 자연스레 편의점을 찾았다.
물은 높은 곳에서 모여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인지 빗소리를 가만 듣고 있으면 나름의 규칙성이 있다. 처마의 가장 낮은 곳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슬레이트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와 담벼락에 떨어지는 소리는 다르다. 둔탁한 마찰음과 경쾌하게 울리는 소리가 제법 규칙적이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고 싶을 때 꽤 도움이 된다. 요 며칠 대개 집안에서 비를 마주한 나는 빗소리를 배경 삼아 여러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집 앞 작은 골목을 흠뻑 적신 비는 집안을 가득 메우다 못해 마음까지 젖어 들게 만든다. 한 걸음도 밖을 나가지 않아도 비에, 빗방울이 만드는 선율에, 그 선율을 따라 골몰하는 시간에 잠식되어가는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