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30분경에 회사에 도착한다. 대개 문은 잠겨 있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으니까. 처음 출근하던 날에는 무려 8시 25분에 회사에 도착했다. 잠겨 있는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40분경에 사수에게 문자를 보냈고, 그는 내게 사무실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날부터 쭈욱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첫 출근자는 대개 나다.
전등과 PC를 켜고, 윈도우가 부팅되기를 기다리면서 천천히 신문을 읽는다. 그날의 헤드라인과 광고를 살핀다. 우리 회사의 광고가 실리거나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게 아니라면 신문을 곱게 접어 사장님 책상 위에 올린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선을 잡아끄는 기사가 있었다. 모 항공사의 주식이 감사 관련해 자료가 누락돼 거래가 중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응? 우리나라 2대 항공사 아닌가? 고작 3천 원대라고?' 주식은 문외한이었지만 온종일 머리에 남았다. 거래 중지는 곧 풀릴 것이고 금세 주식이 오를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거래 중지가 풀리면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도가 나거나 쉽게 망하지 않을 규모의 항공사라는 점도 꽤 매력적이었다.
"OOO항공 주식 거래 중지라는데 그래프가 이상하더라? 거래 중지 풀리면 좀 사볼까 봐."
당시 만나던 친구에게 말을 꺼냈다. 주식 장을 보느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는 연락이 잘 안 되던 친구였다. 숫자 놀음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나보다는 차트 보는 눈이 있으니 한 번 살펴봐달라는 말도 함께 전했다.
"주식은 공부하고 들어가야 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사는 건 안 좋아."
그는 관련 기사나 차트를 살펴보지도 않은 채 나를 야단쳤다. 고작 3천 원대의 주식 몇 주 사는 걸로 야단을 맞아야 한다는 게 살짝 의아했지만, 굳이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아니, 그냥 나는 OOO항공이니까 조금 사볼까 했지. 공부도 할 겸 해서.' 볼멘 목소리로 서운함과 억울함을 살짝 내비쳤을 뿐이다.
며칠 뒤 OOO항공의 감사 결과가 '적정'으로 전환되며 주식 거래가 재개됐다. 한 주에 3천 원이었던 주식은 가파른 빨간색 곡선을 그리며 6천 원, 7천 원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 배가 아팠다. 거래 중지가 풀리자마자 샀다면 아무리 푼돈이어도 2배는 되었을 텐데.
"이게 뭐야. 지금 8천 원까지 올랐어. 3천 원 후반에만 샀어도 두 배잖아."
"이럴 때 들어가면 진짜 큰일 나. 거품 껴서 고꾸라질 거야."
"내가 몇천만 원 넣는 것도 아니고 고작 푼돈이잖아!"
그의 말대로 주식은 금세 고꾸라졌다. 빚이 산더미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도 없었다. 문제는 내가 그 몰래 8천 원대에 주식을 샀다는 것. 천정부지로 오르는 금액에 살짝 눈이 돌아 몰래 몇 주를 샀더랬다. 주식은 9천 원의 선을 넘기지 못하고 급하락해 1년도 더 넘은 지금도 3천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2주 만에 주식에 대한 관심이 팍 식었다. 여전히 마이너스 60%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주식은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파는 거라던데 머리에서 사서 발목에 묵힌 기분이다. 만약 그때 내 직감대로 사서 어깨에서 팔았다면 어땠을까. 지금과 달리 주식에 흥미를 느껴 오전 9시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까.
직감과 고집, 오기의 사이를 오가던 날들이었다. 직감을 놓친 나는 고집을 피웠고, 치밀어오른 오기는 결국 내 발목을 잡았다. 우스운 건 8천 원에 사놓고 6천 원에 몇 주 더 사서 거래 단가를 낮춰보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스로 오기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았던 듯싶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감정은 자칫 나를 잠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