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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MNI Jul 24. 2020

평생 상처를 주는 사람

술을 좋아한다. 여럿이 모여서 왁자지껄 마시는 술보다 한두 명이 모여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한두 잔 나누는 걸 참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계획보다 귀가가 늦어질 때가 많다. 자정보다 일출이 더 가까울 법한 시간에 집에 들어서면 아빠는 한숨도 자지 않은 채 뜬 눈으로 나를 기다렸다. 잠귀가 밝은 엄마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선잠이 깨곤 했다.


"다녀왔습니다."

"일찍 일찍 다녀."

"네."


건조한 목소리에 담긴 걱정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애달프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는 술과 친구가 더 좋았다. 어리석었다. 철없는 시기는 서른 즈음까지 이어졌다. 친구를 핑계 삼던 나는 회식 때문에 매번 귀가가 늦었다. 그도 아니면 홀로 마신 술기운에 잠이 들곤 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집에 들어설 때면 아빠는 여전히 뜬 눈으로 나를 기다렸고 엄마는 매번 잠에서 깼다.


그러다 공황장애를 앓았다. 술도, 외박도, 담배도, 뻔뻔하게 핑계 같지 않던 핑계를 대던 내가 그때는 엄마아빠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행여나 가진 것 없는 부모라는 자책을 할까 봐 단 한 마디도 나눌 수가 없었다. 부모의 자랑이 되고 싶던 내가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나를 망가뜨리고 있을 때. 예컨대 감정이랄지, 몸이랄지 하는 것을 말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아빠가 속상해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글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보잘것없는 기억력을 더듬어보자면 20대 초중반 즈음이었던 듯싶다.


그 당시 나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나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매일 화를 이기지 못해 울며 잠에 들어도 그저 좋았다. 차근히 망가지고 있다는 건 전혀 몰랐다.


그의 작은 반지하 자취방에서 식사라 부르기도 애매한 끼니를 때워도, 전혀 다른 디자인의 커버가 씌워진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어도 그저 좋았다. 전날 마시고 난 주스 컵에 개미가 잔뜩 꼬인 걸 보고도 '그럴 수도 있지' 우스운 에피소드 중 하나라 생각했다. 잠결에 갈증을 느껴 자칫 그 컵에 물을 마실 뻔했음에도.


그러다 문득 엄마아빠 생각이 났다. '엄마아빠가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속상해하지 않을까?' 애지중지 키운 큰딸이 푹 꺼진 매트리스에서 잠들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소중한 딸이 술 마시고 연락 안 되는 남자친구를 기다리다 까무룩 잠들지 바라지는 않겠지.


그렇게 연애는 끝났고, 그 이후 엄마아빠가 조금이라도 속상해할 것 같은 연애는 하지 않았다. 내 기준은 엄마아빠가 됐다. 그런 내가 공황장애 때문에 엄마아빠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사랑이 넘쳐흐르는 두 눈을 바라볼 수가 없다니. 숨길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숨겨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많이 나아진 척, 이제 약 없이도 잠을 잘 수 있는 척.


아직도 나는 엄마아빠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갑작스러운 독립을 선언해 불안함을 안겨주었고 난데없는 수술로 걱정을 더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고 여전히 해가 떠야 잠이 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따로 산다는 것. 망가진 내 생활 패턴을 목격하지 않아도 된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녘, 자식은 평생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뻔뻔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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