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번 약 봉지를 찢고 알약을 입에 털어넣는다. 요근래 컨디션이 안 좋아 두 곳의 병원을 찾았고 각기 다른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큰 병원에서 받아온 약까지, 내가 요새 먹는 약은 총 일곱 알이다. 그 중 두 알은 하루 한 번씩, 다섯 알은 하루 두 번씩 먹어야 한다.
제때 약을 챙겨 먹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이토록 고분고분 들었던 적은 없다. 아, 딱 한 번 더 있다. 2년 전쯤 신경정신과를 찾았을 때. 아침 한 알, 점심 한 알, 잠들기 전 세 알이었던 약은 잠들기 전 다섯 알로 바뀌기도 했다. 그럼에도 심연을 헤매던 내 기분은 쉽사리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내게 얼마나 무심했는 지를 떠올려본다. 난 내게 참 무딘 편이다. 고2때 장염으로 새벽 내내 끙끙 앓고 밤새 몇 번이나 구토를 하다가 아침 6시에야 엄마에게 병원에 가야겠다 말했다. 이 정도 증상이면 밤새 고생 많았겠네,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아픈 걸 잘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도 으레 그정도는 아프겠거니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부터는 사회생활이랍시며 응급실에 실려갈 때까지 술을 마셨고 스트레스 해소라는 이유로 매일 담배를 물었다. 매일 소주 한 병씩 마시지 않고서는 결코 잠들 수 없는 날들이 오랜시간 이어졌다. 이러다 심장이 탁 멈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야 끝없는 야근과 사람을 놓았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는 일종의 강박증과 아픔을 잘 모르는 무딘 성격의 이상한 콜라보레이션은 내게 공황장애라는 병을 가져다주었다. 영양제조차 귀찮아서 안 챙기던 내가 그때는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약을 챙겼다. 마음만 아팠던 게 아니었다. 몸속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것을 몰랐다. 암세포를 떼어낸 후에도 입맛이 없다는 핑계로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않고 망가진 수면 패턴을 달고 한 달 여를 보냈다.
수술 후 급격히 떨어진 컨디션으로 몸 구석구석이 고장이 나고서야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2년 전에 그랬듯 이제야 약을 챙겨 먹는다. 이토록 스스로에게 무심할 수 있을까. 무지함과 아둔함은 타고난 천성일까, 만들어진 성향일까. 나를 누구보다 아껴야 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잘 알면서 결코 실천으로 옮길 수 없는 어리석음. 모질고 모자란 나라서 그게 잘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