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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MNI Aug 15. 2020

성실함은 사람이 타고난 최고의 무기

지난밤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구독 신청했다. 매일 꾸준히 연재 노동을 하는 성실한 작가인데 독자인 나는 받아보기만 하는 주제에 게으르기까지 했다. 신청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봄과 초여름을 모두 지났다. 그의 문체가 그리워 더 미루고 싶지 않았다. 성실함이라는 자극이 필요해진 것도 이유였다.


그에게 메일을 보낸 적 있다. 작년 일이다. 체력과 창의력, 그리고 소재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일 연재를 응원한다, 성실함을 존경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재작년 인스타그램에서 매일 연재해 메일을 보내겠다는 포스트를 보고 의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자기 고백을 더했다.


생각해보니 그 메일을 쓰던 나는 '나도 매일 한 편씩 글을 쓰자'는 다짐을 했던 것도 같다. 쌈밥도 상추 하나만으로는 맛있지가 않다. 깻잎이며 청경채며 그밖에 이름 모를 여러 쌈 채소가 어우러져야 먹는 맛이 난다.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이건 무슨 맛일까?' 혹은 '웩 이건 왜 이렇게 쓰지?'와 같은. 쌉싸름한 상추가 될지, 상큼한 청경채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 우선 글을 많이 쓰고 그 후에 고르자는 생각을 했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게으르다. 계획 세우는 것은 좋아하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건 역량 밖이다. 만약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하나씩 썼다면 365편 이상의 글이 나왔을 것이다. 지금 나는 수확해 먹을 쌈 채소는 커녕, 뿌릴 씨앗조차 없다.


학창 시절 개근상을 주는 이유가 늘 궁금했다. 매일 학교를 나오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건지 의문이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나오는 아이들의 성실함을 인정해야 한다. 성실하다는 건 사람이 타고난 최고의 무기다. 노력으로 대신할 수 없는, 정신력의 영역이다. 특히 나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뭔가를 하는 사람은 더욱더 범접할 수 없다. 난 개근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아, 한 번은 받았나? 공부도 시험 당일 새벽에서야 벼락치기로 했고 원고도 마감을 하루이틀 앞둔 새벽에야 벼락치기로 쓴다.


성실함은 습관이다. 겨우 상추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텃밭을 가꿔야 한다. 어떤 채소를 기를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사람, 씨앗을 뿌리고 매일 물을 주는 사람, 제때 수확하는 사람은 맛있는 쌈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포기하지 않고 매일 꾸준히. 큰 목표보다는 작은 것들부터 차근히. 알면서도 못하니까 내가 평범한 사람인 거다. 그게 가능했으면 더 큰 사람이 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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