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대로의 당신
평일 오후에 지하철에 탔다. 출퇴근길의 북적임과 상반되는 한산한 분위기가 생경했다. 타고 내리는 이도 많지 않았고 듬성듬성 빈 자리도 보였다.
그러다 지하철 손잡이에 눈이 갔다. 정차하고 출발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방향으로 흔들거렸다. 급정거를 하더라도 툭 떨어져 나가지 않고 그저 흔들흔들. 끝없이 흔들리는 손잡이를 보면서 마치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점은 손잡이의 종착지는 정해져 있고, 나의 종착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때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내 이름 석 자를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만큼 유명해지거나 부조리한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여겼다. 아니었다. 어느 순간에서건 나는 둘 중 하나였다. 어느 작은 회사의 직장인이거나 프리랜서를 빙자한 백수이거나.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아주 보통의 존재. 조금 멍청해 보이더라도 꿈을 향해 달릴지, 욕심을 버리고 더 현명한 선택을 할지의 간극에서 헐떡이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꿈과 일,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도무지 좁힐 수 없는 두 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기억 속에서 영화 <프란시스 하>를 꺼내온다. 여러 번 봤음에도 처음 볼 때처럼 숨이 턱 하고 막히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미리 설명하자면 프란시스는 무용수다. 견습 무용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무대에 설 일이 없는, 다시 말해 전속 무용수들의 대역에 가까운 사람이다. 직업이라기보다는 꿈에 가까운 일이라고 해야 할까?
제일 친한 친구인 소피와의 관계도 소홀해지고, 크리스마스 공연도 무산되고 집도 없어진 프란시스는 머물 곳이 없어 전속 무용수인 레이첼에게 잠깐 신세를 진다. 그리고 레이첼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에 함께한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외국인은 외향적인 것 같다. 만약 내가 프란시스였다면 그 저녁 자리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번듯한 직장과 직업, 돈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프란시스는 참 작아진다.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어려워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가볍게 던진 질문이 다시 프란시스를 향한다. 난 그때마다 숨이 탁 막힌다.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무슨 일 하세요?'만큼 곤욕스러운 질문은 없다. 분명 무언가를 하고는 있지만 일(work)이라고 대답하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그것을 꿈이라고 칭하기에는 왠지 철없어 보이는 기분. 내게는 글을 쓰는 일이 그렇다. 늘 '진짜 한심한 질문'이라며 한숨을 쉬는 프란시스와 함께 크게 숨을 내뱉는다.
영화는 프란시스에게 꿈을 포기한 대신 성공한 현실을 선물한다. 안무가로서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룬다. 부럽게도. 자랑스레 우편함 네임텍을 붙이려는데, 풀네임인 'Frances Halladay'를 적은 종이가 너무 길다.
프란시스는 망설임 없이 종이를 접는다. 하늘의 빛나는 별을 꿈꾸던 프란시스 핼러데이(Frances Halladay)가 평범한 세상의 평범한 어른인 프란시스 하(Frances Ha)에 순응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때로는 구부러지고 접히고 구겨질 줄 아는 어른,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겠지. 종착지가 어디인지 모르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지 대답할 수 없더라도,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여러 번 좌절하고 넘어지고 흔들리고 주저앉더라도 평범한 사람은 소소하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대단하진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다. 그래도, 그대로의 당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