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올해 초 잠시 다녔던 사보 회사가 부도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들은 터라 잊고 있다가, 며칠 뒤 갑자기 궁금해져서 회사 이름을 검색했다. 기사가 몇 개 났다. 밀린 프리랜서의 급여가 무려 6억 원에 달한다는 내용으로. 지난해 페이를 여전히 지급받지 못했다는 독촉 연락을 여러 개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와, 그런 식으로 차일피일 미루던 프리랜서들의 급여가 6억이나 되는구나. 직원들이야 어떻게든 급여를 받을 수 있겠지만, 법의 보호 밖에 있는 프리랜서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조만간 또 퇴사를 한다. 힘들어서, 지쳐서, 일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다. 물론 저 이유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결이 다르다. 내가 '팔리는' 글을 쓰지 못해서 매출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을 받아서다. '팔리는' 글이 뭘까.
(내가 왜 그에게 컨펌을 받아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틀간 서른 번이 넘게 원고가 오가는 동안, 내가 쓴 표현은 모두 빨간 표시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니까 전부 틀렸다는 뜻이다. (학교 선배들과 동기들, 그리고 글을 쓰는 이들은 모두 내게 30번이나 피드백이 오가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이라며 대신 화를 내줬다)
그가 내게 제시한 원고는 명확했다. 만약 그게 '팔리는' 글이라면, 나는 쓰지 못한다. 내 눈에는 그저 '거짓'과 '과장', '허풍'일뿐이니까. 난 죽어다 깨나도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게 정말 '팔리는' 글일까. 6년 넘게 쌓아온 경력과 경험이 모두 부정 당하는 기분이었다.
'팔리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는 피드백은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귀결되었다. 어쩌면 내가 이 회사에서 글을 쓰는 동안, 3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이들은 내게 끊임없이 '넌 글을 못 쓴다'라는 피드백을 주고 있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글 쓰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다는 목표가 무너졌다. 글을 못 쓰는데, 어떻게 글 쓰는 프리랜서가 될 수 있겠어? 게다가 글 잘 쓰는 프리랜서들도 제대로 급여를 못 받는 이 현실 속에서.
자존감 회복이 필요해 내가 이전에 썼던 여행지 원고들을 훑어보았다. 내 머리에서 나온 게 맞나 싶은 표현이 적혀 있었다. 어떤 생각의 흐름으로 이런 수식과 묘사를 하게 됐는지 생생히 떠올랐다. 그런데 이 표현도, 이 수식도, 이 묘사도, 이 설명도 모두 '글을 못 쓴다'의 틀에 갇혀버렸다.
어떤 게 글을 잘 쓰는 거지? 어떤 게 '팔리는' 글이지? 내 글은, 내 글은 무엇이지. 난 뭘 위해, 누구를 위해 글을 쓴 거지.
S가 말했다. "500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네 글이 좋다고 하면, 넌 그 방향으로 가면 돼. 499명의 취향을 맞출 수는 없어."
그래, 다시 회복해야지. 저들의 눈에는 내가 '팔리는' 글을 못 쓰는 사람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팔리지 않는'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딱 열흘만 모든 걸 놓고 쉬어야겠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