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끝이 있는 순환’의 삶을 생각해보게 된다. 유한한 삶 속에서 시간은 막연하게 흘러간다. 따라가기 벅찬 시간이 야속하긴 하지만, 마냥 시간을 원망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다는 걸 요새 크게 느끼고 있다. 김수영 시인의 시에서도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많은 고민이 담겨있었다. 특별하다고 여겨진 건 김수영이 시간을 다루는 법이었다. 김수영에게 시간은 피아노와 같은 악기가 아니었을까. 김수영의 시를 읽으면, 그가 그리는 ‘시간의 변주곡’ 악보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김수영은 <엔카운터지>에서 ‘시간은 내 목숨야. 어제하고는 틀려졌어. 틀려졌다는 것을 알았어. 틀려져야겠다는 것을 알았어.’라고 말한다. 시간을 목숨처럼 여긴다는 표현에서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사유하려는 그의 태도가 엿보였다. 시간은 한정적으로 내려진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되풀이되는 순환이라도 어제하고는 틀렸고, 틀려져야겠다는 걸 알았다는 것은, 오늘을 새롭게 살아가기 위한 다짐처럼 들렸다. <엔카운터지>에는 이어서 ‘우리들은 빛나지 않는다. 어제도 빛나지 않고 오늘도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 시간만이 빛난다. 시간의 인식만이 빛난다. 빌려주지 않겠다. 안 빌려주어도 넉넉하다. 나도 넉넉하고, 당신도 넉넉하다.’라고 쓰여있다. 시간을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벅찼던 지난날을 떠올려봤다. 괜히 인생에 막막함을 느껴 한숨을 쉬기도 했고, 당장 눈앞이 캄캄하여 잠 못 이룬 날도 꽤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시간은 늘 빛을 감고 있었다. 그 빛을 활용하여 하나의 변주곡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꽃잎> 시에서 ‘너는 꽃과 더워져 가는 화원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이라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변화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상실’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변화가 찾아오면, 어떠한 것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나날이 반복된다. 여름의 초록빛이 오면, 봄의 꽃을 누렸던 순간들과 멀어지게 되는 것처럼, 인생의 순간순간도 똑같다. 그래서 변화가 무섭기도 하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저 시간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은 순환의 원리에 따라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잃는 것만큼 얻는 것도 생기기 마련이라는 걸 되새기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실감이 더 이상 허무하게만 느껴지지 않고,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뀔 수 있다.
<65년의 새 해>에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 고군분투하며 쌓아온 모든 것을 돌이켜 보게 됐을 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고 말이다. 매일이 기적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은 단순한 반복성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기계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김수영 시인 또한, 시간의 흐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소중히 여긴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기에 우리는 시간을 후회 없이 써야 할 것이다. 때로는 다채로운 감정을 마구 분출하고, 새로운 변주곡의 악보를 그려나가는 것. 그것을 우리 삶의 목표로 정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