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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Jun 21. 2023

분리된 틈이 부착될 수 있게

영화 <디태치먼트> 리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한가지예요.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어른이 되기 위해선 가이드가 필요하죠.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것도요. 나는 그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어요.”

  

  영화 <디태치먼트> 주인공 헨리 바스의 대사이다.  디태치먼트(detachment)는 분리, 무관심을 의미한다. 헨리는 과거 힘들었던 기억으로 인해 학생들과 거리를 두며, 자발적 기간제 교사로 지낸다. 헨리가 새로 배치된 학교는 유난히 문제아들만 모여 있어 교사도 학생도 서로를 포기한 암담한 상황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학교를 운영해 나가는 교장은 교사들에게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충실하여 성적 향상에 이바지하라고 지침한다. 교장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인성 교육보다는 성적 올리기엔 급급했다. 부모들은 자녀를 징계한 교사를 찾아가 폭언을 퍼붓지만, 정작 학부모의 날에는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교육에 무관심했다. 교사는 자신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린 지 오래였고, 그런 교사를 학생들도 자신을 이끌어 줄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소통과 신뢰가 단절된 학교.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문제점이다.


  단절된 소통을 다시 잇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영화 중반부에서 헨리는 세 개의 단어를 제시한다.


Assimilate(완전히 이해하다, 동화되다)

Ubiquitous(어디에나 있는, 흔한)

Double-think(이중사고; 모순되는 신념을 동시에 갖는 것)


  그러면서 헨리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신념체계를 가질 것을 촉구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어떠한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이 교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헨리의 대사처럼 자신은 그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교육을 학생을 평가하는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두는 게 중요하다.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한 가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교과를 가르칠 때 어떻게 가르치면 그것을 배우는 동안에 학생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해답은 결국, 학생들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재미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기 위해서는 그 공부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경쟁력이 될 수 있었던 과거에는 교사 주도의 주입식 교육이 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해 가면서 정보 찾기와 암기 능력은 인간이 로봇을 이길 수 없게 됐다. 교육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는 루소의 말처럼 주입식 교육을 배제하고 자유로우면서 창조를 존중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인간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찾고 기를 수 있다. 가치 있는 정보를 확실히 구분해내고, 이 정보들을 여럿이 논의하여 함께 발전시킨 후에 새로운 가치로 창조하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사회 변화에 발맞춰 걸어 나갈 수 있도록 올바른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학습 조력자로서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키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업은 학생들에게 지식의 내용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방법을 길러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사에게 필요한 역량은 학생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하여 이른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라 불린다. 인터넷과 정보기술에 친숙하며, TV와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을, 텍스트보다 이미지와 동영상을 선호한다.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는 학생들은 사고, 학습, 놀이문화가 기성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을 기존 세대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평가하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일률적으로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고, 필요할 때 원하는 지식을 찾아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 있는 선생님들의 대부분은 그래도 한때는 정말로 자기가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니까.”


  소통 부재의 문제는 모두 관심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는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관계에 거리를 두었던 헨리를 비롯해 문제 행동을 보이던 학생들, 자신을 향한 무형의 폭력으로 자살을 선택한 학생, 주변에 제대로 된 어른이 없어 위태로운 학생, 직면한 문제를 완전하고 완벽하게 해결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교사들이 있다. 결국 영화가 그들을 내세워서 하고 싶었던 말은 끊어져 버린 소통의 끈을 다시 매듭짓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요즘 지나친 교육열과 내 아이가 최고라는 이기주의 때문에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 속에 내몰리게 되고 기댈 수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회 구조가 그럴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사회의 탓만은 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한 구성원이고 사회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라는 것은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급변할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구나 고민거리가 있고 이를 밤이면 집으로, 아침이면 직장으로 가지고 간다. 안전망도 부표도 없는 망망대해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무력감이 드는 순간. 바로 그때가 우리가 부표를 던져야 하는, 행동을 취해야 하는 순간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 더 넓게 봤을 때 우리의 사회는 방황하고 표류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더 나은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 더 나은 사회에서 살기 위해 소통의 끈이 끊어진 우리 사회를 다시 매듭지어야 한다. 분리, 무관심이 부착, 애정이 될 수 있게. 디태치먼트(detachment)에서 어태치먼트(attachment)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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