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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Dec 07. 2022

한 해의 끝에서

2년 같았던 1년을 흘려보내며


2022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나에겐 2년 같았던 한 해가 드디어 끝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구나.


올해는 유난히 길었고 유달리 스스로에 대해 더 알게 된 1년이었기에 특별하고도 징했던 한해를 기록하며 새로운 시작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1

겨울 그리고 봄

매서운 칼바람으로 온 공기를 차갑게 운 겨울이라 하기에도 눈이 내리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겨울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겨울 날씨와 함께 올해가 시작되었다.


1,2월임에도 불구하고 겉옷도 없이 팔짱만 낀 채 애매하게 차가운 공기를 지나쳐 석촌호수를 향해 걸어갔다.


고개를 들면 시들시들 메마른 갈색 잎이 나를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힘없어 보이는 겨울의 외관은 썩 맘에 들지 않지만 겨울의 날씨는 참 좋아한다. 내 주변에서 겉도는 차가운 공기를 재빠르게 들이마시며 깊은 한숨과 함께 기다란 입김을 내보내면 내 안을 가득 메운 답답함을 날려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몇 번의 큰 입김을 내보내며 쉴 새 없이 걷다 보면 다시 나의 본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문을 열자마자 바깥공기와 전혀 다른 후끈한 공기가 나를 덮쳐온다. 마우스와 타자 소리 그리고 한숨 소리는 나의 청각을 한껏 더 예민하게 돋운다. 껄끄러운 잡음과 온도 속을 비집고 들어온 나는 무표정으로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끝나가길 간절히 바라였다.


정말 하기 싫다. 진짜 미치도록 하기 싫지만 오늘 하루도 견뎌보자.


57초, 58초, 59초…

힐끗힐끗 모니터 속 시간만을 바라보다가 눈치껏 1-2분을 더 보내면 재빠르게 짐을 싸고 시원한 공기에 갈증이라도 난 듯 재빠르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늘은 바람이 안 부니 걸을만한 날씨다. 빠른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을 지나쳐 다음 역까지 쭉 걸어가다 지칠 때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축 쳐진 채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하염없이 하였다.

 

내일이 뭐야 지금 당장도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잔잔한 오늘. 아무런 특이점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해 보이는 나의 요즘 일상. 일이 정말 맞지 않지만 간혹은 재미를 느낄 때도 있었으며 매달 들어오는 물질적인 안정감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어떠한 누군가도 어떠한 상황도 그 아무도 나를 대놓고 질타하지도 괴롭히지도 않는 고요하지만 불편한 안정감 속에서 도대체 나는 어떠한 결핍이 있었던 것일까.


기척 없이 영상 소리만 흘러나오는 불이 꺼진 방에 누워있는 아이 또한 무엇이 자기를 괴롭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시간은 늘 약이었어


늘 생각보다 단순한 나는 애꿎은 애매한 날씨 탓을 하며 날씨가 따뜻해지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사람과의 만남을 모거절하며 동굴 속에서 따뜻한 봄이 오기만을 바라였다.



꽃가루와 함께 마지막으로 휘몰아치는 칼바람을 짧게 부딪히고 나면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어렸을 때는 늘 이 날씨만 되면 몸이 아팠었다. 그래서인지 썩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었지만 못난 외관을 가진 겨울보다는 푸릇하고 밝은 봄의 외관이 훨씬 이뻤기에 나의 무감정도 무기력도 나아지리라 믿으며 스스로를 방치하였다.


라운지에서 따뜻한 커피를 뽑아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비치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벌써 벚꽃이 피었구나.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서 마음껏 뛰어놀고 싶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그리고 느끼고 싶다는 감정이 이제야 들기 시작한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나의 무기력도 겨울의 감기라고 생각하니 4월도 잘 넘길 수 있었다.



작지만 부산스러운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귀여운 풀잎들이 나오기 직전, 작지만 부산스러워 본인조차 알 수가 없어 겨울의 감기라 생각했던 마음의 결핍은 결국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그 큰 덩어리는 참아왔던 모든 설움이 폭발하듯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왔으며 지금 당장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는 결핍은 결국 문을 박차고 맨발로 뛰어나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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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름

이제 완벽한 여름이 찾아왔다. 강렬한 햇빛과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습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이지만 적당한 더위와 함께 선선한 바람이 부는 6월의 날씨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퇴사도 하였으니 이제는 정말 슬슬 떠나볼까?

방학만 되면 밥먹듯이 떠난 여행을 못간지 어느덧 2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잠깐 사이 삶의 낙 하나가 사라지니 인내를 하는 것도 설렘을 가지는 것도 까먹은 것만 같았다. 도피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한 나는 잃어버린 감정을 다시 찾으러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살랑이는 바람이 떠나갈 것만 같기 직전, 나는 수많은 도피처 중 정부에서 지원하는 한달살기 프로젝트를 하러 속초에 가기로 한다. 해외도 아닌 국내라 크나큰 설렘은 없지만, 한달동안 맨몸으로 홀로 떠나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나의 갈증을 충분히 채워주리라 믿는다.



한 달 간의 흔적을 남겨 줄 짐을 한 곳에 실러 약간은 어색한 마음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어색한 공기 사이에 비집고 들어온 설레임. 비어져 있는 자리가 사람으로 가득 찰쯤, 어색한 공기는 여러 이들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설렘의 온기를 못 이기고 그대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곳에는 나와 비슷한 12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 오랫동안 목표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지루함의 인내를 이겨내려는 사람. 불안정함 속 불안함을 떨치고 잠시라도 안정감을 찾으려는 사람.

 

한 달 동안 이들과 함께 속초의 바닷바람을 즐겼고 이들과 함께 각자마다 숨겨진 역량을 펼쳤다. 매일같이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붙어있으면서 우리들만의 추억까지 쌓아버렸다.


각자의 고민과 상처를 들고 이곳에 모인 우리는 때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상처를 씻어내기도 하였으며 비릿한 바다 냄새가 질리지가 않는 듯 매일같이 바다 주변을 서성이다 햇빛으로 달궈진 바다에 온몸을 맡기기도 하였다.


뜬금없이 내리치는 비를 맞고 난데없이 온전히 거친 바닷바람만을 맞는 .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지 않는 그리고 덧없어 보일만한 일임에도, 이곳에서는 늘 내 옆에서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였구나 내가 맞지 않는 곳에 있었을 뿐이었구나

'나는 꼭 왜 이런 식일까?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나는 왜 평범하게 거쳐가지를 못하는 것일까?' 남들 잘만 다니는 회사를 고통스럽게 다니던 내내 나를 가장 힘겹게 만들었던 고뇌가 다 시간낭비였음을, 이곳에서의 덧없는 행동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억압과 규제를 유난히 싫어했던 어린 나는 늘 자유로움을 갈망하였다. 그리고 늘 원하는 것이 뚜렷하였다. 선택지가 없다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꿋꿋이 걸어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매번 불안정한 길을 스스로 선택함에 있어 누군가의 도움 혹은 안정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 부딪히고 깨닫기를 반복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기에 자연스레 주변인들만큼은 안정된 사람들만을 곁에 두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하면 나는 안정감을 얻었고 그리고 원치 않게 그들 사이에서 나는 늘 튀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주변에서 안 하는 생각과 행동을 골라서 하는 것이 이전까지 개성과 매력으로 돋보여졌지만 사회인이 되고 나니 그냥 튀는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됨에 한 번 더 작아지고, 나는 그들같이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이들로 모여진 이곳.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아는 이들이 모였고, 자유로운 몸으로 일을 만들어내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이들로부터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동질감의 위로를 받았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안 맞는 곳에 있었을 뿐이었구나. 잘못된 것은 없었구나.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에게 이해받으며 이전처럼 풍요롭게 가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안다는 것에 너무나 큰 행복감을 느끼며 빠르게 왕성한 풀잎이 자라나는 이 날의 계절처럼 한 달 사이에 나의 마음도 건강도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 달간의 도피는 이번에도 역시 성공적이었다.

건강해진 마음과 함께 서울에서 다시금 시작해야 할 나의 길도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안심과 함께 내가 그토록 힘겨워하는 여름을 건강 흘러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 간의 도피생활은 코로나로 인해 잠시 잊고 지냈던 여행에 대한 애정을 한 층 더 강하게 발현시켜주었다. 밥먹듯이 떠난 여행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그다음 시작을 위한 휴식기이자 고된 현실을 인내할 설렘의 존재라는 것을. 여행에서의 경험이 매번 현실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제는 나를 다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도피를 늘 갈망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몇 년간 채우지 못한 갈증 또한 나의 이전 무기력의 원인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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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을 그리고 새로 시작된 겨울

가볍고 날 선 공기가 후덥지근하게 무거운 공기를 집어삼키는 계절이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내가 이 계절에 태어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새해가 찾아오면 순서가 뒤바뀐 봄보다는 차가운 공기가 찾아오는 가을만이 오길 기다렸다. 가을이 되어야 진가를 발휘하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린다. 그리고 노트북을 집어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가볍게 훑고 지난 후 카페에 자리 잡아 작업을 시작한다.


좋아하는 가을의 시작선에, 나는 그토록 원했던 프리랜서 편집 디자이너가 되었다.


지금의 나의 상태는 정말 평화롭고 행복하다.

오랜만에 찾아온 마음의 평화에 아직은 이 평화를 더 길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프리랜서로 이전 회사원 때만큼의 수익을 벌어들인지 이제 막 2달이 지났지만, 이 불안정함 속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불안함이란 친구는 현재의 평온한 나에게 일말의 부정적인 자극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회사원 때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매일같이 울리는 연락에 정신이 없을 때도 있지만 나를 지속 찾아주시는 클라이언트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때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 밤샘 작업으로 시간에 쫓기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곤 하지만 나의 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으며 이제야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찾아왔구나라는 생각에 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 삶에 떼어낼 수 없다고 느낀 여행을 지속하며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다시 한번 더 감사함을 느낀다.


올해 처음으로 맞이했던 애매한 겨울 속 너무나 무겁게 그리고 무섭게 찾아온 결핍이 무엇인 찾아내고 이를 털어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었고 그저 죽어만 가는 눈빛 속 불현듯 살고 싶다는 생각에 뛰쳐나와 버렸다. 도피의 갈망은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돕고 그 인연을 시작으로 내가 원했던 자리에 생각보다 더 빠르게 찾아올 수 있게 되었으며 무기력의 이유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안함 대신 작은 일 하나에 감사함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평화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불안함 속에 안정화를 찾아가고 있는 현재, 나는 안정함 속 불안정함을 갈망했던 올해의 애매했던 첫겨울과 정반대로 행복함과 평온함을 느끼고 있다.


올해의 두 번째 겨울은 평소보다는 늦게 찾아왔다. 조금은 늦었지만 확실하게 추운 바람과 차가운 공기로 올해의 마지막 겨울을 알리고 있다. 이 확실한 겨울과 함께 내 마음에도 확실함을 하나 새겨 넣는다.


불안함 속에서 안정감 찾는 일.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구나.


이제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다시는 스스로 나의 결핍과 갈증을 외면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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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감정의 밑바닥부터 높은 경계선까지 훑고 지나가니 어느새 12월이 찾아왔다.


만약 올해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다른 회사를 갔다면, 다른 인연을 만났다면 달라졌을까?


상반기동안 무기력으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좋지 않는 상태였지만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였다면 나는 지금도 회사를 다니며 방황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몇개월 혹은 몇년을 한참 더 방황하다가 결국 올해와 같은 일이 언젠간 일어나겠구나 덤덤히 암시해본다.


고통을 느낄 수 있었기에 벗어날 수 있었다.

최악을 생각보다 이르게 맛봤기에 두려울 게 전보다 더 없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감정을 잃어봤기에 모든 것을 되찾은 지금, 느낄 수 있는 작은 감정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유난히 그리고 유달리 길었던 올해였다.

평생 이 감정을 잊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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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올해의 마지막을 감사함으로 끝낼 수 있음에 한 번 더 감사함을 느낀다. 기나긴 한 해 동안 많은 감정과 사람들을 스쳐지나왔다. 특히나 지나쳐온 인연들 중 올해는 유난히 타인의 도움을 많이 받은 해라고 생각된다. 늘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함에 있어 누군가의 도움 혹은 가르침을 받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나의 이전 여행들처럼 타인의 신뢰와 환대로 가득했다. 가까운 지인부터 출신조차 모르는 이름 모를 이들까지. 나의 어두운 시기에 함께 공감해 준 이들. 프리랜서의 일을 시작하게 문을 두드려준 이들. 덧없는 행동을 함께 해준 이들.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읽어주며 공감해준 이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존재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내가 꿈꾸는 가치에 공감해줬던, 나의 글을 진심을 담아 읽어주는 이들에게 나 또한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따뜻한 불빛으로 어둡고 쓸쓸한 겨울을 밝히는 연말의 분위기처럼 올 한 해의 끝도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자책 대신 행복하고 따뜻했던 기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모두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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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퇴사'이야기

https://brunch.co.kr/@zin-green/35


더 깊은 '속초'이야기

https://brunch.co.kr/@zin-green/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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