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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Jun 28. 2022

퇴사 그리고 한달 간의 도피

유리구두는 역시 나에게 맞지 않았어


눈을 감아본다.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내게로 다가온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 바람을 온전히 맞는다.

이번에는 파도와 모래가 서로를 반겨주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나는 이어폰으로 두 귀를 막지 않고 물결의 파동을 느껴본다.

온몸을 던진 것만 같은 이 느낌이 좋다.

온전히 오감에만 집중해 본다.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떠한 고민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스쳐가는 것만을 느끼는 '지금'이 좋다.


나는 현재 속초에 와있다.

이곳을 오게 된 시작점인, 지금으로부터 3주 전으로 돌아가 본다.


.

.

.

2일만 지나면 퇴사 날이다.


이 건물이 완공되었던 20살. 롯데월드를 시작으로 편집숍, SPA 브랜드 등에서 알바를 하고 친구들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겹도록 이곳을 배회하였다. 오랜 기간동안 추억이 쌓여있던 이곳에서 직장까지 얻었다니, 참 이 건물과 인연이 깊다며 신기했는데 결국 예상했던 대로 1년도 못 채우고 회사를 나와버렸구나.


모든 것에 대한 회의감과 진로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어디든 도피하고 싶다. 지난 모든 것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회의감 속에헤엄치고 있는 나에게 중학교 친구가 퇴사 통보의 답장으로 사진과 함께 링크 하나 던져주었다.


강원도 속초에서 새로운 일상을 그리고 싶은 청년 스케쳐 15명을 모집합니다!


2년 넘게 여행을 하지 못해 미쳐하는 나에게, 지금 당장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딱일 것 같다며 행정안전부에서 지원하는 청년마을 프로젝트를 지원해 보라는 것이다.


무지함은 용기가 된다. 나에게 지금 가진 것이 없다. 남은 것은 무지함밖에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지원서를 작성하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속초에서 소중한 인연인 13명의 팀원들과 한달살이를 하고 있다.



나에게 오랜만에 안정감이 찾아온 것 같다.

그만 두면 후회 한 번쯤은 한다고 하는데 후회는커녕 이전의 생활을 생각하는 것도 고통스럽고 트라우마처럼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일말의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없다.

진작에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도, 조금만 더 다녀볼 걸이라는 생각도 단 하나의 후회가 없다. 그저 인생에 있어서 그만 마주치고 싶지 않은 기억일 뿐이다. 한 번은 겪어봐야 할 경험을 드디어 겪어봤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 기록을 끝으로 지난 1년 간의 기억을 완전히 묻어두려고 한다. 기억하고 싶지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기에 지금 맡고 있는 바람과 함께 흘러 보내고 싶다.




#1.

두부 한모의 의미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원래 같다면 밤다 노트북을 들어 무엇이든 하던 아이였는데. 나도 지금 나를 모르겠다. 당장 배만 채울 수 있는 저녁을 빨리 해치우고 바로 침대에만 몸을 맡겨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오늘도 저녁 8시 다되어 밥을 먹는구나. 늦었으니 조금만 먹어야지.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거실과 부엌 사이 어중간한 위치에서 애매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조명 아래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오늘도 된장찌개에 둥둥 떠있는 두부를 집어 들었다. 내가 원래부터 두부를 좋아했던 것일까? 요즘따라 저녁 식사마다 두부를 빼지 않는다. 이번 회사를 다니고부터는 찌개에 들어있는 두부만을 골라 먹었다.


나도 모르는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이유 모르는 억울함에 몸부림을 치다가 드디어 출소하두부를 움켜 집어먹는듯한 기분이다. 매일이 감옥에 갇힌듯한 느낌이 드니 집에서라도 해방된 기분을 느끼고 싶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진짜 두부 한모를 움켜 집어 먹으며 이 생활을 끝내고 싶어 했던 마음에서 그랬던 것일까.


정직원으로서의 근무는 처음이지만 인턴 경험을 포함하면 3번째의 회사와 만남이었다. 마음에 드는 회사는 없다고들 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예쁜 감옥에서 버티는 것 같다.



여러 선택안 중 내가 선택해서 간 회사인데 수감생활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누가 강제로 들어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선택지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대체 무엇이 잘못의 시발점이었던 것일까. 오늘도 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일기를 써 내려간다. 그리고 어지러운 생각의 공간을 벗어나 진공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침대에 누워 유튜브에 이어진 영상만 주장창 시하기로 한다.




#2.

예쁜 감옥에서의 수감생활


입사한 지 일주일 차. 원래 입사 1순위였던 여행 분야 회사에서 나의 마음이 바뀌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자 한 통이 왔다.


엄마 아빠, 나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맞을까? 여행 회사에서 다시 제안왔는데 지금 그냥 옮겨버릴까?
너가 마음에서 이끄는 대로 해. 후회할 것 같으면 옮기는 것이 좋은 방법일 거야. 하지만 그래도 이왕 다닌 회사를 3개월은 다녀보고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어.

살아생전에 있어 늘 자식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부모님이었다. 나와 오빠는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고한 아이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남들이 우리의 인생을 관여하는 것에 탐탁지 않아하는 고집 있는 아이들이었다.


근데 지금은 진짜 모르겠다. 나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닌 지 일주일 차만에 나와 안 맞는 신발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아차 하였다. 그런데 입사 전까지 고민했던 회사에서 입사 제안이 한번 더 오니 혼돈이 내 온몸을 지배하였다. 무엇이 최선의 선택일까? 최선이 없다면 무엇이 차선이 선택일까?


고민하는 것도 골칫덩어리일 줄이야. 3달만 참아보고 생각해보자. 지금 모든 것을 판단하기 너무 짧은 시간이잖아? 머리만 아프다.

그렇게 일단은 세 달. 세 달 버티면 1년. 1년 버티면 2년까지. 적금이나 꽉꽉 채워서 나가자. 딱 2년만 버텨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빠르게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음.. 이제는 회사일도 익숙해지면서 돈이 주는 안정감도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왜 회사만 오면 숨이 헉헉 거릴까. 숨이 잘 안 쉬어진다. 때로는 숨이 너무 가쁘게 쉬어진다. 괜찮아. 다들 회사 다니기 힘들데. 나만 힘든 게 아니야. 숨을 깊게 쉬면 안정이 온다잖아.

후---하.


하루에도 몇 번씩 갑작스레 숨이 가쁘게 쉬어지고, 이 들때면 따뜻함만을 건네주던 이불이 돌변하여 내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뇌는 매일 자신의 몸 상태를 진찰이라도 하는 듯 심장에 청진기를 갖다 대어 나의 머리를 온종일 웅웅 울리게 하였다.


현실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없어. 누구든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잖아. 나도 지금 적당히 잘 할 수 있고 적당히 커리어를 잘 쌓을 수 있는 일을 택한 것뿐이야. 2년만 딱 버티고 원하는 것 그때 가서 원 없이 도전해보자. 혹시 몰라 지금은 힘들어도 2년 뒤에는 다 이 고통이 자산이 될 거야.

매일 온몸에서 웅웅 울고 있는데 나는 애써 모른 척하였다. 그동안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도전하고 방랑하며 살아왔기에 이번만큼은 나도 타협가가 되고 싶었다. 아니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싫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제 학생이 아니었다. 뭐가 됐던 이제는 정말 현실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타협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무도 나에게 세상과 타협라고 눈치를 주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겁게 짓르는 시선에 나는 눈치껏 행동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약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호흡은 점점 더 가빠오기 시작하였고, 어떠한 사람이든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집에만 들어오면 검푸른 파도가 나를 덮쳐왔다. 이제는 정말 무섭다. 나 이제 정말 잠겨버릴지도 모르겠다. 얼굴만 둥둥 뜬 채로 검은색의 물이 내방 가득 채워졌다. 수험생활로 모두가 불안하던 고3 때를 제외하고 늘 명량하고 자존감 높은 아이었는데. 누구보다 나 자신을 보듬고 사랑했던 나였는데. 무엇이 나를 정말 미치게 만든 것일까? 일, 환경, 사람. 도대체 어떤 것에서 불균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일까.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한다. 깨끗한 방 하나를 준다. 하루의 시작을 반겨주는 따뜻한 햇빛도 아침 바람을 타고 온 상쾌한 공기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인공적인 공기청정기와 형광등만 준다. 그리고 사람을 넣는다. 시끄럽지 않지만 은은하게 거슬리는 불쾌한 소음이 들린다. 후루룩. 휴우. 하. 콜록콜록. 꿀꺽. 기침부터 한숨 그리고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리는 작은 공간이지만 깨끗하고 예쁜 공간이다.


사람을 미치도록 외롭게 하는 방법도 하나 있다. 친구를 주지 않는다. 아, 사람은 있다.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대화에 상호적으로 공감할 수 는 또래 친구도 없고 서로 이해해주지 않는다. 나의 푸념을, 고통을 들어주지도 공감해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나쁜 소리는 전혀 하지 않는다. 나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과한 업무를 주지도 않는다. 나름 나를 배려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에 다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 일만 잘하면 된다. 신 눈치껏 일하고 눈치껏 행동해라. 윗사람의 의견에는 무조건 긍정적인 태도만을 취하라.


나는 나라는 '사람'을 공감받지 못하고 로봇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감정의 상태로 아주 예쁘고 깨끗한 지옥에 6개월 동안 있었다. 그리고 아주 외롭고 고독하게 나도 모르는 수감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




#3.

내발은 신데렐라 구두가 맞지 않았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하니, 몸이 아프기 시작하였다. 매번 머리가 아프고, 아주 가끔은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숨이 조여왔다. 심장이 매일 빠르게 뛰다 보니 심장이 아팠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 잘할 수 있는 일을 못하기 시작하였다. 생각하는 것이 싫어졌다. 일의 능률이 미친듯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는데 일에 대한 욕심까지 있을 리가. 정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줄곳 좋은 말만 늘어놓았던 상사들이 나에 대한 불만을 드디어 터트리기 시작하였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날도 글을 계속해서 써내려 갔다. 나의 두 손은 이 원인을 꼭 찾아야 한다고 대신 소리치 분노에 휩하였다.


그래, 내가 눈치를 보는 '정체'는 대체 누구인지 찾아보자. 어쩌면 그것이 나를 자꾸 한없이 작게 만드는지 원인일 수 있을거야.

예쁜 감옥의 한복판에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던 날.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지금 나는 맞지 않는 유리구두를 욱여넣어 신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가 늘 내게 해주던 말이 있다.


너는 뱃속에서부터 참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였어. 뱃속에서도 얌전했던 오빠와 달리 쿵쿵 발로 차며 자신의 존재를 티 냈었지. 태몽은 물속을 헤엄치는 거대한 금색 붕어였어. 창의적인 일을 할 아이라는 뜻이래. 어렸을 때도 늘 뽈뽈뽈 뛰어다니는 너를 잡느냐 정신없었고, 혼자 바둑판을 가지고 나비모양을 만들어냈었어.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어 3번의 이사를 다닐 때마다 몰래 창밖에서 새로운 교실에 앉아있는 너를 지켜보면 걱정과 달리 늘 친구들이 네 곁을 맴돌고 있었지. 늘 너는 누구보다 빨리 적응하는 아이였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아이였어.

그렇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다. 나는 정해진 규범에서 '올바른 길의 상징'을 해낼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평생 방랑인으로 살았으면서 이제 와서 현실과 타협하겠다고 피투성이와 물집으로 가득한 내발을 또 다시 구겨 넣어 다닌 것이다. 맞지 않는 신을 신으니 열심히 달릴 수가 있을 리가 있나. 매번 잘만 뛰던 내가 맨날 집에만 오면 아무것도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모든 짐을 정리하였다. 드디어 이곳과 '끝'을 맺을 수 있다. 시원하지도 전혀 섭섭하지도 않다. 그저 깔끔하게 피해 없이 내 할 일을 마쳤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오늘 사원증 반납을 끝으로 나는 드디어 예쁜 감옥에서 그리고 나의 파도 속에서 해방을 다. 이 감옥에서 출소하고 난후 첫 두부를 움켜쥐어 먹는 순간 나는 다짐했다. 잠시 동안 나는 맞지 않는 유리구두를 신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부터는 예전처럼 나에게 편안하고 딱 맞는 신발만을 다시 신을 것을 결심하였다.






epilogue.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버스 창틀에서도 인조 손톱 본 적 있는데 진짜 이상했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것들은 다 기이해. 땅 위에 누워 있는 새, 나무 위에 매달린 사람. 밭에 있는 개도 이상하고.

<나의 해방일지 9화 中>


내가 그 기이함 속에 있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던 나는 애꿎은 내발만 상하게 하였다. 아마 나도 몰랐던 나의 죄목은 '현실을 너무 타협한 죄'이었나 보다.


퇴사하기로 마음 먹었던 5월달.

나의 눈물을 받아주었던 친구들과 나의 눈물에 함께 울어주었던 친구들. 그리고 나의 선택을 전적으로 믿어주었던 우리 가족들. 이외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힘들었지만 나에게 참 좋은 사람들 많구나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지금은 이곳, 속초에서 나는 아무생각 없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지금 속초에서 느끼고 있는 이 오감이 후에 평생 남을 추억이 되길 바란다.

지금 맡고 있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나를 자유로움으로 해방시킨 향기로 남길 바란다.

지금 나를 향해 다가오는 파도가 나를 잠식시키러 온 것이 아닌 싱그러운 인사로 다가오길 바란다.



이전에 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제는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애매하게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했던 나처럼, 이제 새롭게 부딪혀 볼 것이다. 맞는 신발을 찾을 때까지 미친 듯이 새 신발을 신어볼 것이다. 나는 원래 방랑가였으니 방랑가처럼 살아야지. 이제야 살 것 같다. 어쩔 수 없나 보다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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