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중반 - 필연적인 쪽팔림을 넘어서면

20대를 인사하며 #2

by 기록의아이



#2. 필연적인 쪽팔림을 넘어서면

설레었다면 전진의 행위는 청춘의 첫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를 소지하는 데 특별한 조건이 없으며, 어느 방향으로 쏘아도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다. 엉덩이를 든다. 빠르게 머릿속으로 결승전에 닿기 위한 전략을 그려놓는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넘어 귀에서 신호탄이 울려 퍼졌을 때, 그려진 그림에 맞춰 힘껏 질주하면 어떠한 문제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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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넘어지고 말았어

시작을 한다는 움직임은 뛰기 직전 가득 차 있던 불안과 염려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해 준다. 파릇파릇하다고 하기엔 질척여 야생의 잎을 주렁주렁 달은 채 폭주하듯 달려가는 열정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과 패기로 완벽히 완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이보다 완벽한 전략은 없었는데, 미처 이것까지 생각하지 못하였다.


처음이기에 설레지만, 어색하다. 엉성하다. 하나의 결승전을 말끔히 완주한 이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높은 기대치를 요구하지만, 지금 나는 넘어져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이로 말하지 못할 쪽팔림에 큰 소리를 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스스로도 부끄럽게 만드는 첫출발의 엉성함은 관계, 취업, 삶 그 어떤 곳에서도 마음껏 발휘하고야 만다.


엉성함에 수치를 당했어. 내가 너무 못 미더워.

눈앞에 선명하게 그리어지는 쪽팔림이 존재한다.

누구나 한 번씩은 있었던 학교에서 설레게 마주 보던 첫사랑을 향한 마음의 표현에서도.

잘하고 싶은 마음만 앞선 첫 직장에서 멋모르게 벌인 실수에서도.

밤낮을 새 가며 최선을 다해보았지만 부족한 점 투성이인 나의 첫 작품에서도.


내가 봐도 난 너무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반대로 본인만 모르게 홀연히 지나가는 쪽팔림도 존재한다.

자기 역량을 과대평가하며 젊음의 생기에 취해 삶의 경험이 훨씬 많은 이들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은 싹수없는 패기도.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며 나와 다른 이들을 존중하기보다는 다름을 틀림으로 당당하게 외치는 앞장 섬도.


전진의 용기는 문을 열면 필연적으로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양면적인 쪽팔림을 반드시 마주하게 된다.

수치의 경험은 우리의 무른 부족함에서, 조심하지 못하여 내뱉은 실수에서, 스스로에 대한 과대한 자만에서 결코 피하지 않고 아른거리게 만든다.


쪽팔림은 필연적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하여서 그대로 주저앉는다면, 자유의 인생이 시작되는 청춘에서 나아가는 주체를 망가트려버리는 이상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쪽팔림은 필연적이다. 말 그대로이다. 그니까 나에게 수치를 주기 위해 그리고 자존감을 갉아먹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아닌, 모든 처음의 단계에서 당연히 출몰하는 녀석이라는 것이다. 낯부끄러움이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거머쥐는 순간, 수많은 쪽팔림을 넘어 작은 성공의 경험을 이루었을 때 우리에게 주는 트로피인, 자신감이라는 '맛'이 찾아오고 말 것이다.


나에게도 수치의 경험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시각디자인 전공생으로 학교에서 창피의 매 맞음은 매일같이 일어났었다. 어떠한 수업을 들어도 디자인과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작업물을 볼 때면 첫마디로 '물음표'를 던지고, 그 끝에 내뱉는 답은 '다시'였다.

이를 처음 경험하는 모든 학과 학생들은 매정하고 차디찬 피드백이 마치 본인에게 건네는 모욕과 같아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답도 없이 대차게 돌려보내는 얄미움에 교수님을 미워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들이라고 매번 정확하고 옳은 피드백을 주는 것 또한 아니었지만 이 매정함을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할 수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작업물을 엎고 또 엎고 나니, 별로인 것 중에 제일 괜찮은 하나가 탄생하였다.


4년간 귀 아프게 들은 뾰족한 말들이 익숙한 줄 알았는데, 세상 밖에서 이보다 더한 강적을 만나기도 하였다. 구직활동 당시 내가 가진 역량의 매력을 뽐낼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여 피드백을 받았었을 때였다. 디자인에 있어 매 맞음 하나는 자신 있었던 자가 너무나 날카로워 피가 철철 흘리고만 것이다. 몇 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봐도 딱딱한 문장에 따뜻한 인격이 결여된 냉담한 문서였지만, 찔린 곳이 너무나 아프고 화가 나서 택한 일은 미친 듯이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주체 못 하는 분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 마음껏 할 거야'하며 새로운 디자인 하나를 뚝딱 만들어버렸다. 분노 속 결국 내제된 쪽팔림까지 받아들이고만 한 결과물은 유명 디자인 플랫폼에서 조회수 2만 회와 좋아요 600개를 달한 나만의 대표작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결국 내가 상상한 알을 깨고 밑바닥을 마주해야 하는 일인 거잖아?

자기기만을 깨어 잔혹한 정직성을 가져야 하는 쪽팔림과의 맞서 싸움은 인생의 성장을 보다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키일지도 모른다. 마주하다는 것은 자아와 깊은 연결로 시작이 된다. 인간의 모든 존재는 귀하다. 귀하게 자라서 귀한 것이 아니라, 존재가 귀하다. 단 한 개의 별이 온 우주의 중심이 결코 될 수 없다. 별 하나하나의 반짝임이 모여 밤하늘을 밝혀주는 것과 같이 우리는 제 할 일로서 우리의 역량을 빛내며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우월한 자신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전제로 진짜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거절한 채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방어기제로 온몸을 달팽이처럼 감추어 스스로를 통제하는 삶.

자기 직시를 정체성의 붕괴라 생각지 않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느끼며 낯부끄러움을 용기 있게 성찰하며 도약으로 넘어서는 삶.


쪽팔림을 뚫고 나아가는 행위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고통의 동반을 이겨내어 일으킨 용기라는 무지막지한 힘은 인간의 왜곡을 막아주는 객관화로 연민 대신 자신의 굳건한 자아를 만들어 추진력있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자아에 대한 탐색도, 너무나 사랑하였던 그리고 죽도록 미워하였던 관계에서도, 완벽한 산출물을 내고 싶은 각자의 업에서도 우리는 시작과 함께 필연적인 쪽팔림을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를 갉아먹기도 하며, 세상을 원망시키기도 하며, 넘어진 나를 뒤로하여 혀를 끌끌 차며 무시하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나 싫어질 수 있을까 싶은 증오의 마음도 생기게 한다. 설렘을 향하여 뛰고 있는 청춘의 중반, 비로소 내가 부족한 인간임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이것이 생각보다 엄청난 문제가 아님을 이해하였을 때. 우리는 태양이 아니라 별임을 인정하였을 때. 비로소 자만과 엉성함의 쪽팔림을 넘어서 다시 일어나 작은 결실을 맺기 위해 달려가는 용기를 내었을 때, 자신감과 기쁨으로 승화되는 선물을 비로소 껴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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