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시작 - 설레었다면, 그대로 전진

20대를 인사하며 #1

by greenee


나이가 명함인 줄 알았던, 젊음이 패기가 돼주었던 20대에서 이제 발걸음을 완전히 떼었다. 내재된 열기가 주체하지 못하며 함축된 안채가 빛났던, 그렇지만 모든 것이 출발선이었기에 못나 보이는 쪽팔림을 수없이 마주해야 했던 10년을 돌아보니 청춘이 아름답다. 청춘은 아름다웠지만, 뾰족뾰족 날 것의 개체가 이제야 완만히 다듬어지고 끈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들쑥날쑥 불완전한 개체가 무언가를 디딛고 지속할 줄 아는 온전한 인격으로 내 것의 삶이 펼쳐지는 것만 같아 올해로 바뀌어진 숫자가 더 나아질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긴 여정의 아침을 맞이하며 지금이 무르익은 때라 할 수 없지만, '젊음'이란 상징성을 띈 20대를 지나 보니 나에게 짙게 묻어진 잔상은 세 가지였다. 이 글은 20대 인생의 전대기를 나열하는 수록이 아닌, 푸릇한 새싹이 힘겨운 사투 끝에 뿌리를 세우고 자그마한 나무에서 얻어진 첫 열매들을 간직하고자 하는 짤막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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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레었다면, 그대로 전진

나에게 끝은 늘 설렘이었다. 곧 시작할 설렘에 압도되어 다가오는 끝을 기다렸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마다 끝을 장식하는 졸업식날을 기대하였다. 초등학교의 졸업식, 중학교의 졸업식, 고등학교의 졸업식. 3번의 걸친 2월의 시작에 슬픈 노래가 울려 퍼지며 서로를 배웅하는 강당 안에서 촉촉한 눈망울 대신 홀로 반짝반짝 빛나는 생기로 끝을, 그리고 다가올 시작선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 진짜 스무 살, 어른이야!!!

성인의 명표를 국가에서 인정해 주다니, 지독한 '동안' 얼굴인 내 인생에도 이것 하나면 어른임을 모두가 수긍할 수밖에 없겠구나.


어른이 되었다는 설렘은 '자유'라는 특별한 곁들임 하나로 그전에 경험했던 시작과 비할 수 없었다. 유난히 정형화된 시스템을 극도로 힘겨워하는 이가 잠시의 수험생활 동안 애타게 기다린 꿈은 원하는 대학 입학보다 앞선 '자유'이었기에.


자유. 입맛만 다스렸던 자유. 내겐 자유를 거머쥔 이후로 드넓은 하늘을 마음껏 나는 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젠 주도권이 '나에게' 있어!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만 하면 돼!


풋풋하지만 어리숙한 20대의 첫 1년은 노는 게 전부인 양 자유를 대하는 데 있어 어설픔이 묻어났지만, 이것이 내 거라는 사실이 익숙해진 스물둘부터는 설렘이 느껴질 때면 자유라는 선택권을 원 없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나 당장 지금 휴학을 해야겠어-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단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 없었던 휴학이 갑작스레 하고 싶어졌다. 동기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디자인 공부는 실무와 분명히 다를 것 같다는 확신에 당장 회사생활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패션 잡지사에서 에디터가 하고 싶다며 전면에 붙이고 반 대표로 방송실에서 꿈 발표까지 하였던 과거의 날이 자꾸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젠 잡지사는 저물어 가니 그곳의 길을 걷고 싶지 않고, 잊었던 꿈은 자꾸만 생각나고. 어차피 글 쓰는 거 좋아하고 디자인도 이젠 할 줄 아니 혼자서 만들어 보면 되는 거 아닌가? 무턱 된 생각은 주저함 없이 바로 휴학의 길로 향하였다.


'2학기 마치고 같이 하자'라는 친구들의 말을 거절한 채, 소수 정원인 우리 학과에서 3학년 1학기에 홀로 돌연 휴학을 때려버린 뒤 교수님께 막무가내로 연락을 드렸다. 방법을 모르니, 할 수 있는 건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지금 나를 이끈 것은 그저 동요된 마음에 따른 행함 뿐이다. 그렇게 나는 휴학의 동기 그대로 교수님을 통해 3개월 동안의 회사 생활과 더불어 두 권의 개인 실물 매거진을 제작해 보며 복학과 함께 눈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작업에만 몰두하는, 디자인의 세계로 완전히 매료될 수 있었다.


발이 닿기 힘든 곳을 방랑을 하고 싶어-

어릴 적 여행을 꿈꿔보았던 적이 있었나라고 물으면 나는 없던 아이였다. 해외의 경험이 있었나라고 또 물어보면 딱 한 번, 중학교 때 RCY를 통해 배타고 일본을 갔다 온 적은 있었다. 사회공헌활동에 꽤나 관심이 있던 어린아이에게 해외는 여행보다 '은퇴할 나이가 되면 봉사하러 해외 나가고 싶다'라는 상상 정도에 그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쭉- 휴식 없이 직장생활을 하던 엄마에게 금 같은 휴가가 생겼던 나의 스물한 살, 그때부터였다. 전혀 꿈을 꾸지도, 관심을 기울지도 않은 세계에서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짜릿함이 느껴졌다. 다음은 친구들과의 태국, 바로 다음은 한 달간의 유럽. 그렇게 몽골, 쿠바… 범위를 점차 넓혀갈 때마다, 머릿속엔 여행으로 가득 차버리게 되었다. 하나 좋아하면 그것만 오-래도록 좋아하는 덕후기질이 발현되고만 것이다.


자유롭게 처음 마주하는 곳을 거닌다는 것. 새로움이란 설렘을 자극한다는 것. 현실과 다른 시선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모든 박자가 이루었을 때, 비로소 나는 홀로 아프리카까지 머나먼 타국을 방랑하는 배낭 여행자가 되어 버렸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자유를 빼앗겼어…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이 글에서만 '자유'가 몇 번이나 써 내린 것일까. 지겹도록 밟히는 단어가 내게도 끊겼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사춘기 때부터 자연스레 알고 있었다. 자기 선택권과 주도성이 스스로에게 큰 가치인지. 그렇게 자신을 안다고 자만하였다. 이건 정말 몰랐었다. 돈, 명예, 관계 그 어떤 것보다 이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찢어질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무수히 슬펐다. 본인도 무언의 이유 때문인지 갈피조차 못 잡은 채 희망의 빛을 잃어버렸다. 그 불은 점점 작아지고 현재 가지고 있는 회사의 안정성이란 빛도 쓸모없게 느껴진다. 코로나 직전 떠난 쿠바 여행과 자유로왔던 대학생활이 이제 꿈만 같다. 나는 왜 유난히 다른 이들보다 회사라는 곳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감옥 같을까? 줏대 하나만큼은 자신감이었던 아이가 왜 미래성 하나만 보며 이를 잃고 그간 좋아하던 편집디자인을 버린 채 UXUI 디자인으로 넘어온 걸까?


하루가 저물수록 힘을 쇠퇴해져만 갔고 점점 사방을 뛰며 걷는 것보단 누워있기를 선택하였다. 모든 것이 망가져 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살기 위해 문을 박차고 풀밭으로 뛰쳐나왔다. 헐떡였던 숨이 고르게 쉬어진다. 이전에 바라봤던 빛들이 나를 다시 비추고 있다. 그 빛에 심장이 다시 뛰었다. 살아있음을 느끼며 감격의 눈물 한 방울 흘리어냈다. 그리고 스스로를 드디어 이해했다는 듯 자신에게 맞는 이들 곁으로 향하였다. 편집디자인 일과 여행, 그리고 자유. 모든 것을 회복하며 진정한 자유인(freelancer)이 되었다.




모두 입을 모아 20대의 청춘이 찬란하다고 뜻하는 것은 결코 젊음에 포커싱이 두어야 할 것이 아니다. 주도권을 가진 책임감을 처음 가져보기에 경험을 통해 느껴보는 떨림, 즉 설렘에서 전해지는 열정 그리고 무수한 에너지에서 뿜어내는 패기. 설렘에 응한 그대로 '전진'이 있었기에 젊음이란 가치가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경험은 자유를 갈망하였던 자에게 꿈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였던 건 꿈이란 설렘이 비춘 곳을 따라 그대로 전진하기만 하였다. 때론 잠시 세상의 규격에 끼어 맞추어 자유를 빼앗기며 시체가 된 듯 바삭바삭 생기를 잃어갔기도 하였지만, 다시 잃어버린 자유를 쫓으며 그 빛을 따라 뛰쳐나오고 나서야 스스로가 온전해짐을, 그리고 스스로도 몰랐던 잠재된 열정이 타오름을 느꼈다.


설렘을 '느끼는' 것.

그 느끼는 감각을 '깨우는' 것.

그 빛을 발견하였다면 그대로 '전진'하는 것.


이것이 지금이 나를, 그리고 우리의 지금을 만들어준 20대 열정의 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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