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 에필로그
스터디카페에서 초점 없는 흐릿한 눈으로 영단어를 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멍을 때리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고요한 적막 가운데 시계 속 째깍째깍 소리만이 내 귀를 강하게 때리고 있다. 3.. 2.. 1.. 땡. 여섯 시! 밥이나 먹을까. 순간 머리에 도파민이 돌며 한 손에 겉옷을 든 채 거리로 나선다. 벚꽃이 휘날리던 화사한 거리의 풍경과 반대로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의 취준생은 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집으로 가는 길이다. 취업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스물아홉 살이 되어버렸다.
서른 살이 되면 근사한 어른일 줄 알았는데
왜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일까.
이십 대 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뭐 하고 산 걸까.
여전히 독서실에서 행정법이나 붙들면서 아직도 불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동시에 과거의 선택들이 후회스러웠다. 왜 나는 잘하지도 않는 걸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도전해서 그렇게나 긴 시간들을 낭비했을까. 온갖 상념에 빠지며 매일 지나치던 휴대폰 매장 건물 앞을 거닐던 중, 매장에서 흘러나온 그날의 노래 가사는 머릿속을 강타했다.
♪ 나를 알게 되어서 기뻤는지
나를 사랑해서 좋았었는지
우릴 위해 불렀던 지나간 노래들이
여전히 위로가 되는지
아이유는 팬들에게 자신과 함께한 지난 시간들이 의미 있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취업을 위해 달려온 지난 이십 대의 시간들이 내 스스로에게 묻는 소리처럼 들렸다. 사실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 지난 이십 대에 대한 후회가 많이 있었다. ‘이렇게 공부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대학교 졸업하고 공무원이나 준비할걸.’ 지금까지 하고 싶은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지난 이십 대는 어느덧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시간이 되고 말았다.
♪ 당신이 이 모든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 끄덕이게 되는 나의 삶이란
오, 충분히 의미 있지요
그러나 노래 속 가사는 그런 생각들을 정반대로 바꾸어 놓았다. 이십 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난 이십 대라는 기억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경험들을 종이에 주-욱 써보았다.
재수생, 대학교, 편의점 음식점 택배 알바, 봉사, 군대, 첫사랑, 공모전, 장기 연애, 아나운서 준비, 6개월 만에 때려치운 첫 직장, 한국사, 토익, 공시생···
순간순간의 내 선택이었다.
작은 추억이었다.
애틋함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나의 이십 대를 스스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할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지난 세월에 대한 수치심이 아니라 인정이다. 음악으로 위로받는다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가 볼 땐 어렸을 때부터 대단한 일들을 해낸 아이유이지만 그런 사람도 이십 대 초반에는 자기혐오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겨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러다 스물다섯 살을 기점으로 스스로에게 더 놀랄 일도 더 실망할 일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라일락>이란 노래를 통해 젊은 날의 추억과 이별했다.
나에게는 <에필로그>라는 노래가 그 역할을 대신해 줬다. 나도 내 과거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취업 준비로 인해 나락으로 갔던 나의 자존감이 다시금 오르막길을 걸을 수 있었다. 여전히 칙칙한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충분히 잘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기로 했으니까.
우리의 젊은 날의 추억이 비록 고통과 힘듦의 연속이었을지라도 훗날 돌이켜볼 때는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럼 이제는 <우리의 30대>를 향해서.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 다음으로 가요
툭툭 살다 보면은 또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러리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