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루앙프라방, 가끔 그곳의 골목에서 먹은 닭죽 생각이 난다. 아침을 해결하려고 숙소 근처 시장을 어슬렁 거리는데 골목 귀퉁이 큰 냄비 한 솥 옆에 앉은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계단에 앉아서 닭죽을 먹는데 그게 참 좋더라. 물론 닭죽 맛이야 거기서 거기지, 어마 무시한 인생 닭죽을 만났다는 얘기까지는 아니고. 적당히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히 이국적인 맛이 좋았다. 쌀쌀한 아침을 데우는 뜨끈한 국물이 좋았고. 다음 날도 아침 식사는 그 길에서 해결했다. 언제더라 다시 사진을 뒤적거려보니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백숙은 참 간편하면서도 맛 내기 좋은 음식이다. 그러니 늘 하던 대로 백숙을 끓이고 그걸로 닭죽까지 이어도 좋지만, 가끔 살짝 비틀어 먹고 싶을 때도 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책 - 푸드 랩에서 이 레시피를 찾았다. 공식명 닭고기 채소 수프. 딱 라오스의 닭죽처럼, 적당히 친숙하고 적당히 이채롭다. 꽤 담백 깔끔한 맛이라 아내도 좋아하고. 그래서 종종 닭 육수를 끓일 때마다 찾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이 음식은 닭 육수를 끓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닭 육수는 수많은 레시피들이 있는데, 닭고기(자투리로 남은 몸통 부분 또는 가급적 닭발이나 날개 등 콜라겐이 풍부한 부위로), 채소(양파, 당근, 샐러리), 그리고 허브, 이렇게 3종의 재료를 넣고 2~3시간 정도 긴 시간 푹 끓이는 것이 공통의 룰인 것 같다.
닭 육수가 있다면 다음은 꽤 간단하다. 쌀(장립종!)과 함께 오래 끓여야 하는 채소들 - 채 썬 양파, 당근과 샐러리 - 를 담고, 육수를 부어 팔팔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약 15분 정도 처음 넣은 채소가 익도록 시머링 하고. 케일이나 시금치 같은 짧게 끓일 채소와 미리 삶은 닭고기를 더 넣고 5분 정도 끓여 마무리한다. 이때 고명으로 올릴 닭고기는 육수를 끓일 때 중간쯤 건져 둔다. 끝까지 끓인 닭은 맛이 다 빠져나와 밍밍하더라.
그렇게 또 한 끼를 만들었으나, 아, 아쉽게도 이번 조리는 실패를 해버렸다. 따로 구매해 둔 장립종 쌀이 없어 밥 지을 때 사용하는 햅쌀을 사용했더니, 그리고 밥양이 많아서, 사진처럼 걸쭉한 죽이 되어 버렸다. 뜨끈하고 맑은 국물을 떠먹을 수 없다면 이건 닭죽이지, 닭고기 채소 수프의 비주얼이 아닌데. 서운한 와중에 그나마 팍팍 올린 고수가 살렸다. 아무튼 다음번엔 쌀 준비 잊지 말자. 찬 겨울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시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