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드이며, 이것이 자랑스럽다.
분명 요리책인데, 첫 장을 여는 문장이 신박하다. 이 호기로움이라니! 어쨌거나 나에겐 2019년의 책이며, 뜻밖에도 요리 책에 감동을 받아버리는 경험을 준 책이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부분 부분 반복하며 끝까지 완독한건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대학 때는 공부를 안했으니까.
저자가 최고의 요리사인가 하면, 그건 아닐 수도 있겠다. 책에는 거의 모든 음식 분야에 걸쳐 꽤 많은 레시피를 담고 있으나, 레시피가 핵심 콘텐츠라고 보기도 어렵다. 같은 요리라도 유튜브나 다른 매체에서 더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전통적인 조리법과 통념들에 반복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에 있다. 정말 그런가? 왜 그렇지? 그 질문에 이론을 끌어오고 실험을 거치면서 지금의 우리에게 실천적인 답을 찾아준다. 그 과정의 명쾌함이 좋았다.
지금 책을 대충 훌훌 넘겨보니 대략 이런 질문들이 1,000 페이지 가까운 책 곳곳에 채워져 있다.
달걀 껍질 잘 벗겨지는 방법이 궁금한가? 찬물로 식히라고? 식초에 담그라고? 효과가 있을까? 버섯을 씻지 말라고 한다. 씻으면 흐믈 흐물해진다고. 정말 그럴까? 양파는 어느 방향으로 썰어야 할까? 차이가 있을까?
연어를 가장 완벽하게 굽는 법은 무엇일까? 닭 전체를 뻑뻑하지 않으면서 고루 잘 익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파스타는 아주 큰 냄비에 끓여야 한다는데 정말 차이가 있을까? 고구마의 단맛을 최고로 끌어내는 법은 무엇일까? 유화란 무엇일까? 튀김옷을 가장 바삭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왜 그런 차이가 날까?
그러니까 이 책의 감동 포인트는, 난해한 수학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는 깔끔한 해법을 찾아냈을 때의 감동과 비슷한 결인거 같다. 장담하건데 요리 배우려는 사람 중 이과 성향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할 책이다. (다른 성향 분들께 어떨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코드 때문인지 유튜버들, 특히 고기 관련 남성 유튜브 채널은 대부분 이 책에서 배운 고기 얘기에서 시작하고는 하더라.
이 책 덕분에 개별의 조리법 보다는 조리를 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에서 취미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아직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