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첫여행

멀고도 가까운 엄마와의 여행. 우리가 하지 못한 이야기

by 징 z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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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때 매우 인위적인 표정을 일부러 짓기도 하지만 가장 자연스런 표정이 찍히기도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진짜 나의 모습을 사진이 말해줄 때가 있다. 어쩌다 보니 계획하게 된 딸들과 엄마와의 여행. 그렇게 추진된 엄마와 딸들과의 첫여행, 3박 4일간의 해외여행동안 찍힌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엄마와 사진 찍을 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놀라웠다. 표정, 엄마와의 팔짱낀 모습 등까지 모두 어색하다. 그런데 내 동생은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럽지?


그동안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다. 데이트를 한 것도 마트에 장을 본다거나 쇼핑을 같이 한다거나 흔한 모녀지간의 일들이 나에겐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물론 이것도 나의 기억에 한해서다. 엄마 입장에서는 나와의 기억이 수만가지이겠지. 나를 낳고, 키우고 그 과정 과정을 기억하며 지켜봤을테지만 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릴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그러나 딱히 사이가 좋다, 안좋다 이분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난 왜 엄마를 불편해 하는지, 그 익숙함이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여행 속에서 그것을 조금이나마 되돌아 보게 되었을 뿐.


여행길에 내 손에는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이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지난번에 너무 대강 읽었던 터라 이번 여행길에 다시 한 번 읽어보자고 집었던 책인데, 의도치 않게 리베카 솔닛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곧 나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는 이는 물 긷는 장치에 묶인 낙타처럼 계속 원을 그리고 돌면서 부지런하게 비극을 길어 올리고, 매번 다시 이야기할 때마다 그때의 감정도 되살아난다. 서사가 없었더라면 희미해졌을 감정이 생생하게 유지되고, 과거에 있었던 일과 거의 관련이 없고 지금과는 더욱더 관련이 없는 감정이 서사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39-40쪽)


여행 중 대화는 주로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어떤 감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선택된 기억 중 좋은 것만 추려내어 이야기했지만 자연스럽게 다른 감정들까지도 스멀스멀 올라왔고, 난 이 감정을 피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난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있었는가?

일주일에 한 두번씩 엄마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난 그것을 의례적으로 받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우선 순위에 밀려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다. 밥 먹었니?로 물으며 시작되는 우리의 통화는 길어도 1분을 넘기기 힘들고, 난 한 번에 전화 안받는 것으로 집에서 ‘찍혀있는’ 딸이다. 애교가 넘치고, 전화도 자주 하는 동생과 늘 비교된다.


엄마와의 불편함은 ‘솔직함’과 연관이 있다. 솔직해질 수가 없다. 핏줄로 이어진, 사회적으로 의례 편한 관계일 것 같은 모녀지간이지만 모든 이야기를 공유할 수 없다. 가깝지만 먼 관계이다.


‘IMF키즈’라고 할 수 있는 난 어렸을 때부터 참으면서 살아왔다. 단칸방에서 사는게 창피해서 친구들한테 거짓말을 할 때도,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안되기에, 엄마가 숯불구이집에서 뜨거운 불판 나르며 종아리에 하지정맥류 발병을 보면서, 그렇게 징징대지 못하는 사춘기를 보냈다.


엄마는 나에게 눈물 한 번 보인적이 없다. 같이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아빠와는 다르게 엄마는 어쩌면 저렇게 감정이 메말랐을까 할 정도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다 울어서 이제는 눈물이 없다는 엄마의 그 이유는 내가 성인이 되고서야 들을 수 있었다. 늘 엄마네 남매들과 외할머니는 왜 닮은 부분이 전혀 없을까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서야 ‘친외할머니’가 아님을 사촌동생으로부터 들었고, 그 때 처음으로 ‘배신감’같은 감정을 느꼈다. 왜 딸인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이후에도 ‘집안’ 이야기들은 비밀이 많았고, 그 비밀은 또 다른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듣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솔직함을 공유하지 못하는 관계. 당연히 모녀지간이라고 모든 것을 공유할 수도 없고, 공유하라는 법도 없다. 다만, 그동안 엄마를 불편해 했던 이유가 이런 감정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행 중의 ‘대화’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유명한 여행사에서 ‘모녀여행’ 광고를 한다. 여행을 통해 엄마를 발견하게 된다며, 밝고 친근한 모녀의 영상을 보여준다. 그동안 나도 여행을 다니면서 엄마와 단둘이 여행하는 많은 딸들을 보며 부러웠다. 그러나 난 그럴 ‘용기’가 없었다. 이번 여행도 동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엄마는 여전히 결혼하고 싶지 않는 내 동생에게 결혼하라고, 나에게는 빨리 아이를 가지라고 ‘잔소리’를 한다.

우리들의 슬픔을 아픔을, 솔직함을 공유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 그 관계는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다.

엄마에게서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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